지난 4개월 이상 달러당 8백90~8백95원선에서 안정세를 보였던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사상 처음 9백원선을 뛰어넘으면서 국내
외환시장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25일 장중 한때 9백4원80전까지 올랐던 달러환율은 26일에도
수직상승세가 이어져 9백9원80전까지 치솟았다가 외환당국의 강력한
개입으로 다소 진정돼 9백4원에 마감됐다.

이같은 달러환율 급등은 연초부터 이어진 대기업들의 침몰과 특히
기아그룹의 부도유예사태로 촉발된 국내 금융기관의 대외신용위기 등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수 있다.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도 추락은 외국금융기관의 외화공급축소및 상환압력을
불러 일으켰고 이에따른 국내외환시장에서의 달러부족은 원-달러환율을 계속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환율상승을 막을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외환당국의 적극적이고도
지속적인 시장개입이지만 지난달말 현재 외환보유액이 적정수준인
3백70억달러보다 훨씬 적은 3백37억달러에 머물러 정부의 개입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봐야한다.

또 설령 개입능력이 있다 해도 달러를 공급하게 되면 원화자금을
흡수하게 되어 시장금리를 상승시킬 위험이 있다.

벌써부터 시중금리가 뛰고 있는 것은 이때문이다.

물론 달러환율의 상승은 장기적으로는 수출경쟁력 개선이라는 긍적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달러환율 상승에 대해 비교적 느긋한 태도를 보여온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 요인이 더 많다고
봐야 한다.

우선 외화자산보다 외화부채가 더 많은 대기업들은 달러환율급등으로
연말결산에서 막대한 평가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들은 심한 환차손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12월결산 상장법인중 은행을 제외한 5백55개사의 상반기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회사가 입은 환차손은 1조2천4백81억원으로 같은기간 경상이익의
43%에 달한다.

변경된 회계제도에 따라 올해 상반기에 반영되지 않은 환차손까지 포함하면
손해는 2조8백91억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이쯤되면 올해 우리 기업들은 헛장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보사태가 터졌을 때부터 여론이나 정치권의 눈치만 보지말고 외환시장에
미칠 파장에 대비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피할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외환당국의 환율안정대책이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땅에
떨어진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

큰 소리 땅땅 치다가도 한마디 설명도 없이 슬그머니 방어선을 물러서는
지금과 같은 태도로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아울러 미봉책보다는 이번 기회에 우리 외환시장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철저히 분석해 이를 보완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환율안정은 곧 경제안정의 필수조건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