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이 오늘의 이름을 얻은 것은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이르러서다.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지 등은 용구현과 처인현이 합쳐 "용인"이 탄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용인의 족보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이 나란히 이 지역을 다스렸던 점을 반영, 삼국이 사용하던 지명이
고스란히 사서에 기록돼 있다.

백제의 멸오(대동지지)로 출발한 용인은 고구려의 구성현(삼국사기),
신라의 거서현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고려때는 용구현.

추론컨대 용이 자비를 베푸는 땅이란 뜻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