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옥 <서울산업대 교수>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겸업화는 극히 초보 단계에 있다.

정부는 여러 금융감독기관을 통합하는 개혁안을 먼저 서두르고 있어
시장 현실보다 제도 개혁이 훨씬 앞서가는 느낌이다.

또한 며칠전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 발표에서는 은행과 보험이 결합하는
방카슈랑스(bancassurance)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새삼스럽게
나왔으며 그 논리가 다소 자의적이다.

유럽의 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방카슈랑스의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우리의 금융기관들도 당연히 따라가야 하는 추세는 아니다.

유럽에 비해 다양성이 풍부한 미국의 금융시장에서는 종합금융화와
대형화 전략을 추구하는 기업도 있지만 오히려 일정분야에서의 전문적인
강점을 살려 경쟁력을 유지하는 금융기관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유럽의 방카슈랑스 추세에 무조건 편승하기 보다는 이러한
제도가 우리의 은행이나 보험회사의 상호 발전을 위해 정말 유익한지 냉철히
검토한후 도입여부 및 시기와 범위 등을 결정해야 한다.

우선 방카슈랑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금융연구원의 발표는 국내 은행 중
현재 유일하게 보험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농협의 경우 은행업과 보험업을
같이 함으로써 민영 보험회사들보다 훨씬 효율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즉 농협은 민영 보험회사보다 사업비를 적게 지출할 뿐만 아니라
보험계약이 중도에 실효.해약되는 비율도 훨씬 적으며 따라서 은행이
보험업을 같이하는 경우 은행의 수익성 제고는 물론 낙후된 보험산업의
효율성도 제고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보험 영업의 속성을 깊이 이해하지 않은 채
농협과 민영 생명보험회사의 영업실적을 피상적으로 비교했기 때문에
나온 연구결과인 듯 싶다.

보험 산업에 있어 사업비율과 실효.해약률은 조직의 성격, 판매상품의
종류, 그리고 가입대상자 등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기업별
수치를 놓고 경영의 효율성을 논하기는 어렵다.

우선 일반 은행이나 민영 보험회사는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주로
큰 도시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지만 농협은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하는 공제조합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거래고객도 대부분 농촌 주민들이다.

농협은 조직상 상호회사의 성격을 지니는 반면 민영보험회사나 일반은행은
주식회사의 형태이기 때문에 소위 대리비용(Agency Cost)등을 포함한
사업비 지출이 다르다.

또한 농협은 민영보험과는 판매상품의 유형이 달라 사업비 구조가 다르다.

게다가 외국의 예를 보면 은행이 보험을 판매하여 성공한 상품은 대개
연금과 같은 저축성보험에 국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철저한 사전준비 없이 겸업화가 허용되면 은행에 의해 추가적인
보험판매가 창출되기 보다는 새로운 저축성보험이 기존의 은행저축을
대체함으로써 거래 비용만 증가할 가능성도 크다.

민영보험에 비해 농협공제의 실효.해약률이 낮은 것도 농협이 경영면에서
앞서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금융연구원의 발표는 은행업을 하는 농협은 보험회사와는 달리 신뢰성을
바탕으로 자발적인 보험가입자를 고객으로 유치하고 있으며 모집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해약률이 낮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를 들면 1994년에 도입하여 처음으로 모든 금융기관이 공평하게
시장경쟁을 벌인 개인연금의 경우 은행이나 보험회사 모두가 무리한
가입권유를 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개인연금이 도입된 초기에는 여러 금융기관중 은행의 판매실적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중도에 해약 혹은 휴면상태에 들어간 것이 많고 현재는
생명보험회사의 판매실적이 훨씬 앞서 있다.

보험계약의 실효.해약은 주로 가입자의 소득수준 변동과 이에 따른 보험료
부담감, 그리고 보험판매원과 가입자와의 관계유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연구의 결과이다.

농협공제는 민영보험에 비해 건당 보험계약금액이 평균적으로 훨씬
낮은데다 보장성 상품의 비중도 크기 때문에 보험료 부담이 훨씬 작으며
따라서 경기침체시 소득변동에 따른 해약 유인도 작다.

그러므로 단순히 사업비와 중도해약률을 비교함으로써 농협이 민영보험회사
보다 효율적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를 근거로 일반은행이 보험업에 진출할 수
있는 방카슈랑스의 도입을 촉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정부가 방카슈랑스의 허용여부와 그 범위를 결정하려면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통한 비용절감과 시너지(Synergy)효과를 국내 은행들이 과연
실현할수 있는 비용구조를 갖고 있는지 우선 검토하여야 한다.

또한 은행과 보험이라는 이질적인 영업문화가 결합될 때 조직 내부의
갈등비용과 업무의 복잡화로 인한 관리비용의 증대, 그리고 전문화의
포기로 인한 상품의 품질 하락 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동시에 따져
보아야 한다.

게다가 적금과는 달리 적립한 보험료의 일부가 보장기능을 위해 소멸할 수
밖에 없는 보험상품을 은행이 취급함으로써 신뢰성이 손상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