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떼는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난다.

정확한 간격을 두고 "ㅅ"자 모양을 이루면서 똑같은 날개짓을 하며
날아간다.

그 모습에서 자연의 신비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우리는 왜
기러기떼보다도 못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기러기떼같은 질서는 접어두고라도 계속 터지는 사건속에서 정치 경제는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사회 전체는 방향감각을 잃고 헤맨다.

왜 이렇게 되었나.

흔히들 "지도자 부재"를 이유로 든다.

미국엔 지금도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생존하면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중국의 마오쩌뚱, 덩샤오핑은 죽은 후에 더욱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됐다.

우리에겐 그러나 오직 총과 법의 심판을 받는 대통령, 아니면 아들의
잘못을 사과하는 대통령과 대권후보자들이 있을 뿐이다.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기러기떼의 이동엔 반드시 리더가 있다.

다른 기러기들은 리더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러므로 정연한 질서가 이루어진다.

바람의 저항이 가장 심한 맨 앞에서 리더가 방향을 잡아주면 무리가
리더를 따른다.

결국 모두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이르게 된다.

그동안 줄곧 리더십(leadership)만 중요하다고 외쳐대고 "팔로워십
(followship)"에 대해선 말도 들어보지 못했던 우리들이 이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우리는 지도자로부터 많은 것을 요구하고 기대한다.

정치적 영도력과 경제적 통찰력, 안보의식과 통일철학, 결단력과 추진력,
도덕성과 성품 등등.

그래서 모름지기 이러한 잣대를 가지고 지도자를 고른다.

하지만 지도자를 뽑아놓고는 이를 따르지 않는다.

기러기떼는 일정한 대형을 이루면서 이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양력"을 발생시켜 적은 힘을 들이고도 먼 거리를
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한정된 자원으로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먼저
지도자를 중심으로 노력을 결집할 수 있는 대형을 만들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여기서부터 벌써 무질서한 까마귀떼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기러기떼가 날면서 "기럭 기럭"하며 우는 것은 앞서가는 리더와 주위
동료들에게 힘내라고 북돋아주는 소리라고 한다.

한참을 날아 리더가 지치면 다른 기러기가 잠시 앞에 나서 리더를 쉬게
한다.

대열에서 처지는 동료가 있으면 그중 몇마리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처진
동료를 도와주면서 본 대열에 합류하도록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같은 "팔로워십"이다.

국민의 비판의식이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아울러 지도자를 따르는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협조는 하지 않고 무능과 실정을 비난하기만 한다.

아니 그 이전에 우리는 이미 지도자를 불신한다.

하기는 우리에게도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눈에 잘 안띄는 사조직을 통해서 지도자와 줄을 연결해놓고
단물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지도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을 움직여서 가신이 되고자 "각하"와 "모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권력의 이동과 변천에 따라 눈치를 보면서 합종연횡인지 줄서기인지를
일삼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우리는 지도자없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

모두가 일등 아니면 안된다는 일류병을 앓고 있는 한 우리에게서 훌륭한
지도자는 나올 수 없다.

모두가 일등이면 모두가 지도자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중에 지도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지도자를 따르려 하지
않고 돌아가며 나눠먹기나 요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일등이면 모두가 꼴찌라는 얘기도 된다.

배우고 덕을 쌓은 지식인들일수록 리더의 자리와 팔로워(follower)의
자리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명심할 것은 팔로워가 없는 사회에선 리더가 나올 수도 없거니와
필요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