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도의 대한항공기(KAL) 추락사고는 정쟁과 경제파탄에 찌든 한국사회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2백명을 넘는 인명의 희생이 무엇보다 가슴아프려니와 이용도가 날로
높아져 대중교통 수단이 되고 있는 공중교통의 안전성제고, 나아가
물질문명을 운영함에 있어서의 고도의 정확성과 함께 눈앞의 이익보다는
인명을 중시하는 기업윤리의 확립 등 사고때마다 반복해 제기되는 해묵은
과제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생존자가 많고 블랙박스가 즉시 회수되었으니 만큼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기상악화, 기체나 공항시설의 이상, 그리고 승무원이나 공항 관계당국의
과실이 당장 떠오르는 원인의 범주다.

그 가운데 어느것이 주원인인가를 철저히 규명하는 일이야 말로 사고재발을
방지하는 전제가 아닐수 없다.

게다가 이번 사고는 항공기와 피해자의 국적, 사고장소와 항공기 제작사의
속지 등 적어도 한-미 양국의 관할사항이 중첩되어 사고원인 규명이나
사후처리에 걸쳐 양국의 협조가 어느때보다 긴요해 보인다.

한국은 짧은 민항사에 비하면 쓰라린 경험을 많이 가졌다.

83년 사할린에서의 소련기에 의한 KAL기 피격, 87년 북한 공작원에 의한
벵골만에서의 추락등 2백69명과 1백15명 희생의 대참사를 잊을수 없다.

그밖에도 목포나 리비아사고 등 다수의 인명을 희생시킨 국적민항기의
국내외 여러 사고가 떠오르지만, 고의아닌 순수 사고로는 이번 사고가
가장큰 규모의 참사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보면 사고의 원인이나 성격이 서로 달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귀책사유를 짚어 올라갈때 원인은 기상조건도, 기체도,
시설도 아니며 그것을 만들고 운영하는 인간들에게 종국적 책임이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고의의 격추.폭발은 차치하고 이착륙시에 집중되는 모든 항공기 사고들이
각기 그때만의 예외성과 의외성을 갖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고발생 확률상으로 높고 낮은 차이는 있을망정
사고발생확률이 "제로"(전무)임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요체는 무엇인가.

경험법칙상 또는 과학적 계산상 일정확률이상의 사고가 예견될땐 과감히
회사의 경제적 고려보다 사회적 고려를 선택하는 결단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항공사라면 취항기를 대체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할땐 결항에서
오는 당장의 불이익이라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일부 의문시되는 괌공항 착륙유도시설의 이상유무에 관해서도 공항당국은
마땅히 항공사와 같은 대안적 고려를 했었어야 마땅함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의외의 사고가 아니라 상당한 사고확률을 요행으로
피하려는 인재의 반복, 미필적고의의 되풀이가 귀중한 인명을 빼앗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족에 대한 원만한 위로와 보상은 물론 관련국 관계인들의 양심에서
우러나는 수습노력을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