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목소리를 일컬어 "신이 만든 최고의 악기"라고 한다.

깊은 슬픔에서 환희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감성을 가장 민감하게
표현하는 목소리.

하지만 성악가의 경우 길어야 30년, 그중에서도 전성기 몇년동안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 인정받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다움을 잃어간다는 점에서 비극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빛나는 악기가 목소리가 아닐까.

레코딩의 역사는 성악의 역사이기도 하다.

축음기의 출현 이후 사람들은 당대 뛰어난 가수들의 노래를 녹음,
언제라도 "최고의 악기"가 주는 감동을 재현하고자 했다.

창립 1백주년을 맞은 EMI는 지난 1세기의 성악 레코딩에서 찬란히 빛나는
성악가 80인의 명연을 담은 음반"전설의 목소리"와 "마법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전설의..."에는 SP부터 LP 모노 그리고 초기 스테레오시대를 살다간
성악가 40인의 목소리를 담았다.

1902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테너의 상징 엔리코 카루소의 전설적인
공연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중 "의상을 입어라"를 필두로 화려한 기교의
소프라노 엠마 칼베, 감미로운 목소리로 "모든 여인들의 우상"으로 불린
테너 티토 스키파,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전형 에바 터너, 러시아의 초대형
베이스 표도르 샬리야핀, "영원한 디바" 마리아 칼라스 등의 불멸의 노래
40곡을 수록했다.

"마법의 목소리"에는 현재 무대에서 활동하거나 은퇴한 성악가 40인의
노래 40곡이 담겨 있다.

독일 가곡 리트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감미롭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 청순가련형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 빅3 테너중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호세 카레라스,
고도의 테크니션인 체코의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 제4의 테너로
불리는 로베르토 알라냐 등 거장부터 신예까지 망라돼 있다.

20세기 성악사를 일별할 수 있는 성악가사전같은 음반이지만 EMI에서
음반을 내지 않은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이 아쉽다.

비가 쏟아지는 데서 녹음하는 것처럼 잡음이 들리는 SP부터 현대식
디지털 녹음까지 레코딩기술의 발전사를 훑어볼 수 있는 점도 이 음반의
또다른 재미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