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화 폭락에서 시작된 동남아 통화위기는 핫머니의 투기적 공격에 굴복
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출부진 버블붕괴 경상수지적자지속등 경제
여건의 악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부진 및 정책실패와 핫머니의 "합작"이 통화가치 폭락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이 대표적인 예다.

태국은 지난 93~96년중 핫머니로 추정되는 단기 외화자금이 1조바트(약
30조원)나 유입됐다.

이 자금은 주로 부동산등 비생산적인데 투자돼 버블을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80년대 후반부터 95년까지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8%를 상회했다.

신흥개발지구인 스쿰비트의 땅값은 7년새 200배나 뛰었고 주가도 90~94년
동안 3배 가까이 올랐다.

임금도 연평균 12%나 상승,물가상승률(6%)을 두배나 앞질렀다.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데 외국자본유입(자본수지흑자)을 바탕으로
위험한 파티가 계속된 셈이다.

그러나 버블은 터지게 마련이다.

높은 임금상승과 바트화 고평가로 수출이 지난해 0.2% 감소했다.

성장의 기관차가 멈춘 것이다.

땅값 폭락으로 단자회사가 무더기로 도산했으며 태국 최대의 전자업체인
알파텍사 마저도 부도위기에 몰려 있다.

지난해 3천7백91개사가 쓰러졌고 올 1.4분기만도 벌써 8백32개사가 문을
닫았다.

태국병이 심각해지자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와 줄리안 로버트슨의
타이거펀드 같은 핫머니들이 지난 1월과 5월 바트화 공격에 나섰다.

핫머니는 약 40억달러 가량을 공격자금으로 쓴(바트매도 달러매수 선물환
계약)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또 지난해 11~12월에 보유 주식을 매각, 주가가 35%나 폭락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태국은 1월엔 금리인상으로, 5월엔 40억달러 이상을 외환시장에 쏟아
부으며 바트화를 지켰다.

5월에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필리핀등 인접국의 협조개입도 가세했다.

이때 핫머니는 약 3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돼 태국정부의 승리가
확실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바트화를 실제가치보다 높게 유지하기 위해 보유 외환을 낭비한지 두달도
못돼 관리변동활율제 도입으로 두손을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바트화 폭락의 이면엔 태국정부의 정책실패도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은 이미 핫머니에 항복한 필리핀과 다음 공격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비슷하다.

필리핀은 외채가 4백20억달러로 GDP(국내총생산)의 60%에 육박하고 있으나
외환보유고는 1백3억달러에 불과하다.

올들어 외국인 자금 유출로 주가는 10%이상 하락했다.

부동산 과잉투자와 막대한 부실채권 및 경상수지 적자에도 시달리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5월에 치뤄진 총선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정정이 불안하다는 추가요인을 안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 주춤해지면서 성장률도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친인척이 국가산업의 대부분을 경영하고 있어 정실주의
에 따른 부패가 만연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대동소이하다.

경상수지적자가 GDP의 9.7%에 달하고 외환보유고도 2백63억달러에 머물고
있다.

단기외채가 외환보유고의 2배에 육박한다.

바트 페소 다음의 핫머니 공격대상으로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가 꼽히고
있는 이유다.

링기트화는 통화위기 이전보다 10% 낮은 달러당 2.73링기트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동남아의 통화위기는 싱가포르나 홍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환율이 크게 오르는데도 이들
국가간 기존 상태를 유지할 경우 수출경쟁력 등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됐던 싱가포르달러가 연중 최저치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한국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게 국제외환시장의 시각이다.

외환전문가들은 지난 5~6월중 한국주식시장에 유입된 1조6천억원중에
핫머니가 상당히 포함돼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동남아지역에서 한국의 유통이나 서비스업종에 직접 투자한 9억달러도
핫머니 성격이 짙다고 보고 있다.

동남아 국가가 통화위기를 겪고 있는 동안 상대적으로 유리한 한국에
자금을 옮겨 놓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들 자금으로 지난 5월초까지만 해도 나돌았던 "외환위기론"이 사그러
들었지만 언제 다시 불거져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지난 92년 영국을 상대로 게임을 벌인 결과 영란은행(영국의
중앙은행)을 굴복시키고 10억달러 가량을 벌어 들였다.

이번 동남아 통화위기도 1백70억달러를 움직이는 그를 비롯한 핫머니들이
주요 플레이어로 참여하고 있다.

핫머니들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경제 기반을 튼튼히 하는게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콸라룸푸르=홍찬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