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성분을 분석하는 사람.

많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술을 마신다.

약간 써도 "술이 원래 그렇지 뭐"하면 끝이다.

그러나 김애진(25)씨는 술을 마시며 항상 연구하고 분석한다.

약간 쓴맛은 어디서 나오며 사람들이 원하는 맛은 무엇일까.

그녀의 직업은 조선맥주 연구소 연구원.

술의 냄새를 맡고 기기를 이용해 정밀분석을 거친후 술의 나쁜성분을
없애는게 그의 주임무다.

결국 사람들이 맛과 향이 더욱 좋고 몸에도 좋은 술을 마실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한다.

96년 조선맥주에 입사한 김씨의 원래 꿈은 선생님이었다.

얼굴에는 지금도 약간은 선생님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대학입시과정에서 약간 궤도를 수정, 서울대 농생물학과에
입학했고 대학원에서 식물병리학을 전공하면서 이 직업을 택하게 됐다.

지금은 만족한다.

술을 편하게 마시지 못하는 것이 약간은 서운하지만.

김씨는 이 직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관리와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또 개코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

항상 섬세한 향과 맛의 차이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관리가 이 직업의 생명이다.

또 술과 사람, 그리고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있어야 감정에 치우친
평가를 이겨나갈 수 있다고 김씨는 말한다.

식물병리학을 전공했거나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해볼만한 직업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의 기호는 항상 변하는 것.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시류에 부합되지 않는 술을 만들어
수많은 애주가들의 원망을 사게될뿐.

김씨의 직업상 가장 큰 보람은 역시 자신이 분석해 맛과 향, 성분을
조정한 맥주를 많은 사람들이 마셔주는 것이다.

생활도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다.

연구소 사람들은 항상 술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기계를 통해
정밀분석하지만 술도 많이 마신다.

술이 주는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이상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김씨도 연구소에 들어와 주량이 늘었다.

지금은 맥주 3천 정도는 거뜬히 마신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회사를 사랑하는 또다른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수원에서 혼자 사는 김씨.

오늘도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자신이 만들어낸 술로 달랜다.

그리고 수원행 전철안에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