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지애

그녀는 미국의 24시간 뉴스채널인 CNN서울지국의 한국인 여기자다.

얼마전 그녀는 CNN뉴스에 나타나 개방된 한국소비시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입자유화물결을 타고 편의점 백화점에 가득한 외국소비제품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일부 한국소비자들을 인터뷰해가며 그들의 기호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던중 그녀는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인
''막가파''젊은이들이 포승줄에 묶여 경찰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못된 젊은애들의 극히 예외적인 치기가 엉뚱하게도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의 단면으로 둔갑되는 현상이었다.

손기자는 한국의 대선후보들에 관한 보도도 내보냈다.

한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온갖 모욕을 당하며 수난에 수난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대통령 한번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수없이
많다는 냉소가 짙게 깔려 있는 기사였다.

그러면서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김현철씨가 포승줄에 묶여 조사관들에게
끌려가는 모습과 노태우.전두환 전직대통령의 재판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들 가슴속에 깊이 묻어두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들이
생생하게, 그것도 종일 반복방속되는 CNN을 통해 보여지고 있었다.

<> 유시열 제일은행장

한보라는 말만 들어도 지겨운게 제일은행 사람들이다.

물론 한보사태는 우리사회으 시스템이 빚은 총체적 부실의 한 단면이다.

때문에 한보를 놓고 제일은행 사람들만 욕할 것은 못된다.

그렇다고 해서 제일은행이 모든 책임을 면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 하반기 미국 ''캘리포니아 에너지''가 발주한 2억3천5백만달러 규모의
필리핀내 다목적댐건설과 관련, 제일은행이 한보에 대해 공사이행보증을
서준 이후 제일은행이 보여준 직무유기와 태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당시만 해도 이공사는 그런대로 수익성도 있고 해볼만한 사업이었다는게
당사자들의 얘기다.

그렇지 않았으면 계산 빠른 제일은행이 끼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보가 부도에 휘말리자 현금흐름이 끊겼고 필리핀 현장사람들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공사책임자들은 구제금융요청을 했지만 유시열행장 등 새로 구성된
제일은행 임원진은 ''과거의 일은 모른다''는 식으로 외면했다는 것이다.

2억달러가 넘는 공사가 외국회사로 넘어간것은 물론 발주처인
''캘리포니아 에너지''는 이행보증금 1억1천만 달러중 7천9백만 달러를
몰수하겠다고 나섰다.

제일은행은 수긍할수 없다고 소송을 제기, 재판 계류중이지만
''사후약방문''의 결과가 빚어질 것이 뻔한 실정이다.

공사책임자들은 당시 7백만달러만 지원됐어도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다''고 했건만 새임원진의
''책임질일은 안한다''는 식의 관료주의 때문에 생돈 7천9백만달러만
날리게 됐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상적자는 바로 이런데서 돈이 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자''는 구호가 설득력있게 들리는지
모른다.

때맞춰 TV광고에 출연, ''앞만보고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유시열행장의
모습은 묘한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 정근모씨

나름대로 전문성이나 관료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전과기처장관이다.

이를 감안, 정부는 지난해 정씨를 국제원자력협력대사에 임명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사무총장선거를 의식한 조치였다.

그러던 중, 정부는 피선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중도사퇴를
종용했다.

이 과정에서 볼썽 사나운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찌됐건 본인은 사퇴를 거부한채 투표가 실시됐다.

결과는 엘바라테이 후보 33표, 정근모 후보 0표.

정근모 후보가 단한표도 얻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조차도 정후보를
밀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논리가 통하지않는 ''콩가루 집안''의 표본이라고나
해야 할까.

<> 이강호씨

세계최고의 펌프제조회사인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사장이다.

작년초 그런포스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물품을 공급할
공장을 지으려고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우선순위에 올라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수억달러짜리 공장이 들어서면 국내고용에도 도움이 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덴마크 TV에 비쳐진 한총련대학생들의 연세대 난입은 한국을
후보지에서 탈락시킨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대만이 공장을 대신 가져갔고 이강호사장은 분류를 삼켜야했다.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할수 있는 ''야만적인 나라''
, ''대통령병 환자''들로 가득한 ''용들의 나라'', 자기가 내세운 후보에게조차
표를 던지지 않는 ''콩가루 집안같은 나라'', 경상적자에 허덕이면서도
생돈 새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주인의식없는 나라'', 철지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지새는 지구촌의 ''이상한 나라''.

우리는 요즈음 과연 누구를 위해 종을 치고 있는 것일까.

<정치.경제.국제 총괄부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