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애니메이션족"

최근 PC통신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족"을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만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만화를 좋아한다.

일본의 최신작을 구하러 수시로 청계천 비디오 가게를 헤집고 다니는
것은 보통.

만화영화 한편을 위해 해외 원정까지 떠난다.

지난 3월 일본에서 만화영화 "에반겔리온"이 개봉된 첫날 관객틈에는
한국에서 달려간 수십명의 애니메이션족이 끼여있었다.

D상사 사업개발팀의 김선미(24)씨는 오는 7월 "에반겔리온 2부" 개봉에
맞춰 일찌감치 휴가 날짜를 잡아뒀다고.

현재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에는 2만여명의 애니메이션 동호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같은 "열성당원"이 아니더라도 젊은층 사이에서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날로 늘고 있는 추세다.

애니메이션붐과 함께 관련 직종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세종대 상명대 공주전문대 등 전국 11개 대학에 애니메이션 학과가
개설돼 전문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

서울의 10여개 애니메이션 전문학원들도 애니메이터 지망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만화. 우선 재미있다.

오뎅이 말을 해도 자연스런 세상.

"말도 안되는"일이란 없는 곳이 바로 만화의 세계다.

상상력을 무한대로 끌어올리는 애니메이션의 마력은 영상세대인 젊은층의
감각에 꼭 들어 맞는다.

세계적인 제작사들이 앞다투어 애니메이션 작품을 내놓는 것도
애이메니션 열기를 부추기고 있다.

월트 디즈니의 "헤라클라스"를 필두로 메이저 영화사들이 올 여름부터
잇따라 초대형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터뜨릴 계획이다.

현재 99년까지 약 20여편에 달하는 만화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제작사들이 만화영화에 온 정성을 쏟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장규모는 약 1천2백조원.

이 매머드급 시장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것은 오로지 아이디어와
손재주다.

적은 제작비용에 비해 흥행가능성은 크다.

뿐만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극장수입과 비디오 판권료외에 엄청난 부수입을 챙길 수
있다.

각종 게임기 완구 팬시제품 등 캐릭터 산업으로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제작사들이 군침을 흘릴 수 밖에 없는 것.

우리나라 제작업체들도 이 황금시장을 개척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90년대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시조인 "블루시걸"이후 "아마게돈" "홍길동"
"헝그리베스트5" 등이 줄을 이었다.

흥행은 시원찮았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들이 만화산업에 대거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국산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밝아지고 있다.

쌍용정보통신이 7월에 개봉될 "전사 라이안"을 지원한 것을 비롯 제이콤
삼성영상사업단 동양그룹 등으로 참여가 확산되고 있는 것.

현재 "꼬마대장 망치" "전사 라이안" "철인 사천왕" 등의 야심작들이
대기업들의 후원아래 화려한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디즈니사의 대부분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색채작업을 도맡을 정도로
뛰어난 제작능력에 기획력만 더해진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게 관련
전문가들의 전망.

젊은층 사이의 애니메이션 열풍을 애니메이션 선진국을 예고하는
청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일까.

< 김혜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