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의류업체부터 재고부담을 덜고 패션전문 유통
업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앙대 홍병숙 교수는 5월30일 서울 노보텔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21세기로 가는 한국의 패션유통"세미나(한국유통학회.한국의류학회 패션
마케팅연구회 주최, 통상산업부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에서 이같이 밝히고
"패션유통업체는 현실화된 외국 의류업체의 국내진출에 대응해 그들의
강점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설봉식 한국유통학회장(중앙대교수) 이은영 한국의류학회
패션마케팅연구회장(서울대교수) 홍병숙(중앙대) 변명식(장안전문대) 박재옥
(한양대) 이진용(서울산업대) 교수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날 사장 김광현 유신
쥬얼리 회장 장순웅 한국텔레마케팅 사장 문인곤 섬유산업연합회 상무
이창복 LG패션물류 부장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했다.

변명식 장안전문대 교수의 발표내용을 소개한다.

< 정리=조정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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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구조의 개선방안 >

우리나라의 패션유통업은 의생활이 서구화된 1960년대 이후 양장점과
재래점을 중심으로 시작해 1970년대중반 대기업이 기성복시장에 진출하면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당시 기성복은 대다수 소비자가 아니라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유통업은 고급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백화점이나 직영점의 형태로 전개됐다.

이때부터 우리 유통업은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지 않으며 제조업자가 재고
부담을 안고 소매기관에 판매를 위탁하는 형식의 제조업 주도 구조를 이루게
됐다.

1980년대 후반에는 올림픽과 함께 캐주얼 의류시장이 확대되면서 직영이
아닌 대리점 형태의 유통업이 활기를 띠었다.

1990년대에는 수입자유화와 함께 해외브랜드와의 경쟁을 위해 고급스럽고
간소하며 소비자의 편의를 중시하는 유통형태가 시작됐다.

몇몇 의류업체가 시작한 멀티 브랜드숍(Multi Brand Shop)이 그 대표적인
예.

여러 업체 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멀티 브랜드숍은 기존 생산자 위주에서
"소비자를 위한 상품구색 갖추기"(Product Assortment)로의 변화를 촉진했다.

최근에는 재고를 떠맡는 대신 유통마진을 더 높게 보장받는 사입제 소매점
이 등장해 의류업체가 재고부담을 더는 길이 생겼으며 철 지난 상품을 싸게
파는 상설할인점도 성행하고 있다.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패션제품이 해외 어느곳보다도 비싼 이유는
바로 백화점 위주의 유통구조에 기인한다고 한다.

소비자에게 유명상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백화점에 들어가야 하고 업체
수가 늘면서 입점 경쟁이 치열해지자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다는 것.

외국상품 우대, 높은 판매수수료 요구, 무절제한 세일 등은 패션업체의
경쟁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매장형태의 다변화는 이런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지금까지 국내 백화점이나 수입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던
외국 대형의류업체가 국내시장에 직접 진출했으며 이와 맞물려 패션유통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의류업체를 포함한 대기업이 패션전문 유통업에
속속 출사표를 던져 유통경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96년 하반기에 미국의 "DKNY"가 국내시장에 직접 진출했고 올 초 이탈리아
의 "프라다" 미국의 "콜럼비아 스포츠" 등 세계 굴지의 패션업체가 우리나라
에 들어와 명동과 압구정동에 10여개의 대형매장을 운영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패션유통업체는 대리점이나 백화점을 통한 기존 유통
경로로는 판로확보의 한계에 봉착하고 외국 대형업체에 앞서 유통망을
다변화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자체 대리점망에 의존하던 업체들이 자사뿐 아니라 타사제품까지
함께 판매하는 패션전문점 사업에 직접 나서고 있다.

신원유통은 90년 서울 명동에 30여개 패션브랜드를 함께 파는 패션전문점
"에벤에셀 패션물"을 연데 이어 96년 광주시 충장로에 패션전문백화점
"프라이비트"를 운영중이다.

나산은 96년10월부터 상표 제한없이 유명업체의 재고의류를 값싸게 파는
패션전문 할인점 "이코레즈"와 대형 멀티 브랜드숍 "워너비"를 개점했다.

또 삼성물산은 에스에스패션과 별도로 패션전문점 사업에 나서 96년5월
명동에 1천4백평 규모의 패션전문점 "유투존"을 운영중이다.

이 곳은 37개의 국내외 패션브랜드를 갖추고 하루 평균 1억5천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렇듯 외국 패션업체의 국내시장 직접진출시대를 맞아 적극적 변신노력이
절실하며 몇곳은 이미 결실을 맺고 있다.

유통의 다각화와 현대화는 시스템의 문제인 동시에 사람의 문제다.

유통은 생산된 제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채널이 아니라 소비자
요구를 발견하고 이를 충족시킬 상품을 구비하는 종합적인 기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패션상품 유통에는 패션과 유통에 관한 전문인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패션전문 교육기관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거의 모두
의상 디자인에 국한돼있다.

머천다이저(상품기획가) 패션바이어(제품 구매담당자) 등 패션유통 전문가
의 양성이 시급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