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돌이는 유명대형서점에서 누드사진집을 떳떳하게 구입하고는 기분이 좋다.

전에 일본배우나 국내 모가수의 누드집을 사러갔다가 왠지 쑥스러워 발길을
돌리던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세계적인 누드모델" "인터넷의 여왕"이자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의
누드집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이승희의 사진집 "버터플라이".

며칠전 방한한 주인공이 TV에서 자신의 누드는 외설이 아니라 예술이라
했지.

신문 방송 할 것없이, 정론지나 스포츠지, 뉴스나 연예프로 가리지 않고
야단법석을 떨며 한번 사서 보라고 부추긴게 이건가.

좀 밋밋하긴 하지만 역시 아름답고 예술적이야.

그래서 대형서점에서 길목에 수북히 쌓아놓고 파는 건가.

모돌이가 이승희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난 연말 모일간지에 1면 가득
실린 기사를 읽고나서.

그 유명한 잡지 "플레이보이"의 자매지인 "란제리"에 실린 동양인 최초의
커버걸이자 네티즌이 뽑은 누드모델 베스트5에서 데미 무어를 누르고 3위를
차지했단다.

두살때 부모가 이혼하고 일곱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인터넷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가슴뭉클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김치를 즐겨먹으며 자랑스럽게 한국
이야기를 한다니 훌륭하구나.

당장 인터넷 마니아인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아 이승희"하며 능숙하게 사이트를 찾아 보여줬다.

다채롭고 풍부한 사진들, 무엇보다 그 적나라함에 매료된 모돌이는 이승희
팬이 된다.

사람들이 이런 걸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그 이승희가 한국에 왔다.

때맞춰 자서전 사진집 비디오 CD롬이 나오고 방송 신문 잡지 등 대중매체
에서는 이승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여주며 법석을 떨었다.

모돌이는 만족스러웠다.

그 자연스럽고 솔직하고 당당함이란.

역시 월드스타답구나.

처음 읽은 기사에는 누드모델은 진짜 꿈인 배우가 되기 위한 발판이라고
했는데 인터뷰에선 "남성보다 훨씬 강하다"느니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느니
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합리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심야토크쇼에서 이승희가 보여준 프로다운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감탄한
모돌이는 다음날 심야연예프로에서 "이승희 열풍"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특히 인터뷰때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가지고 확대 해석하는 것이 불만.

이승희 매니저가 잘못하긴 했지만 방송의 오만불손한 태도는 더 참을수
없군.

저 방송사는 이승희의 풀스토리를 앞서서 소개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앞장서서 이승희를 붕 띄워논 매체들이 "이승희 신드롬"에
대해 "문화 사대주의"니 "소비상품주의"니 하는 것을 본 것같다.

절묘한 "치고 빠지기"구나.

이리도 써먹고 저리도 써먹는구나.

모돌이의 기대대로 온갖 방송 연예 오락프로그램을 이승희가 휩쓸었다.

지나치다는 생각은 안든다.

웬만큼 유명한 스타가 내한하면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그 얼굴이
나오던게 어제 오늘 얘기인가.

그 이승희가 오늘 돌아간단다.

아마도 수억원쯤 챙겨서 간대지.

이번 내한기간을 통해 더욱더 이승희 팬이 된 모돌이는 못내 아쉽다.

이승희 안녕.

하지만 멀지않아 이승희가 나오는 에로틱한 예술영화를 볼수 있을 거란
생각에 모돌이의 가슴은 설렌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