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들어 본격 시작된 올해 임-단협상에선 몇가지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무엇보다도 협상의 무게중심이 지금까지의 임금협상에서 단체협상쪽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노사협상은 임금을 몇% 올리느냐 하는 것이
핵심쟁점이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임금보다는 고용불안해소가 협상의 최대 역점사항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올봄 임-단협상에서 임금보다는 단체협상에
역점을 두고 근로자들의 고용안정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라는 내용의
협상지침을 이미 각 사업장에 내려보냈다.

민주노총 산하 사무노련 등 일부 산별연맹은 고용보장을 위해 임금인상
요구율을 한국노총의 기준선인 11.2%나 민주노총의 10.6%보다 훨씬 낮추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노동계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불황에 따른 심각한 고용불안을 감안한
매우 현실적인 선택으로 이해된다.

꼭 불황이 아니더라도 근시안적인 관점에서의 임금인상 투쟁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고용안정과 종업원들의 능력개발쪽에 협상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올해 노사협상에서는 또 노사 모두를 위해서나 우리 경제를 위해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변화도 눈에 띈다.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노조들이 노사협상을 연말의 대선정국과 연계시키기
위해 교섭시기를 가능한 한 늦추도록 사업장 노조를 지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총련 금속연맹 자동차연맹 등 3개 노동조직의 통합움직임에서
볼수 있듯이 상급 노동단체들이 일단 세를 불려놓고 천천히 교섭에
임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들의 전략대로 노사협상이 장기화되면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과
대선분위기 등이 맞물려 올해 임-단협상은 어느 방향으로 틀어질지
알수 없는 상황이다.

외풍을 타기 전에 협상을 최단시일에 마무리짓는 것이 단위사업장 노사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끝으로 노-사-정 모두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번 임-단협상이
신노사관계형성을 위한 첫 시험대라는 점이다.

노동계는 이번 단협을 통해 새 노동법중 노조에 불리한 조항은
무력화시킨다는 전략을 내놓고 있지만 이같은 전략은 노동법분규에
이은 또한번의 파동을 불러올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즉각 철회돼야
한다.

경영계 역시 새로운 각오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과거처럼 온정적이거나 당근에 의존한 대응은 협력적 노사관계형성을
오히려 방해할 우려가 있다.

정부의 역할 또한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경영계가 지난 4일 청와대회동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산업현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요구한 것이나, 김대통령이 "엄정한
법집행"을 약속한 것은 모두 선진노사관계 정착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적시했다고 해야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