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부총리가 경제장관 합동기자회견에서 밝힌 정책방향들은
따지고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교과서적인 원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망스럽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요행수나 기교를 부리기 보다는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에 그의 구상에 기본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면서, 그의
"원론적 구상"이 정치논리 등으로 굴절되거나 오염됨없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지켜보고자 한다.

그는 단기적인 경기부양조치를 취할 생각이 없음을 거듭 분명히 했다.

성장률이 5%대로 낮아지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물가안정과 국제수지개선에
중점을 둬 경제체질개선, 곧 구조조정작업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업이 크게 늘어나는 등 경기상황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지만,
그렇다고 돈을 풀어서 그 방향을 되돌릴 수 있는 국면이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 경기부양조치가 유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은 옳다.

문제는 구조조정을 무엇부터 어떻게 해나가 경제체질을 강화하느냐다.

우리는 강부총리가 물가안정을 위한 각 경제주체의 고통분담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대목을 바로 그런 시각에서 특히 주목한다.

"올해는 임금수준보다도 고용안정이 더 중요하다" "기업이익이 난 연후에
성과급으로 배분받겠다는 자세가 돼야 한다"는 대목들이 그것이다.

또 임금안정의 고통을 감내하는 봉급생활자들에게 물가안정으로
보답하겠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임금인상이 고비용 저효율을 구조화하는데 큰 몫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임금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부총리의 주장으로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면 "그러므로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분명한 행동강령이
제시돼야 한다.

민간기업에서도 노사간 임금동결에 대한 합의가 적잖이 이루어지는
국면이므로 더욱 그렇다.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어떻게 고통을 분담할 것인지를 좀더 분명히
밝혀야 한다.

올해 세수목표를 2조원 줄이고 예산집행도 그만큼 줄이겠다는 얘기가
"정부의 고통부담"과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만 내버려둬도 해마다 수조원씩 불용 및 이월예산이 발생하는 마당에
비목도 밝히지 않은 "2조원규모 집행유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지고
보면 의문이다.

물론 인건비,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정부청사 신.개축비, 도청소재지
이전비용 등을 그만큼 줄인다면 얘기는 다르다.

여당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SOC(사회간접자본)건설을 미루는 식의
예산절감이라면 국민이 기대하는 "정부의 고통분담"과는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경제에는 차라리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절감"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불황의 고통을 분담하는데 정말 솔선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이 신뢰를 얻고, 현재의 구조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