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복잡계(complex system)라는 말이 최근
붐을 타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용어지만 서구나 일본에선 마치 삼라만상의 이치를
풀어줄 요술방망이처럼 이 이론이 요란스럽게 날개를 펄럭이고 있다.

자연과학분야 뿐 아니라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까지 좀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이 이론을 응용하려는 시도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복잡계의 과학" "복잡계의 경영" "복잡계의 경제학" 등 저작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복잡한 세상만사를 더 복잡하게 하자는 것인지, 좀 더 명료하게 하자는
것인지 아리송할 뿐이다.

근대과학은 모든 현상을 가장 작은 단위로 분석하여 이를 기본으로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학문적 방법이었다고 볼수 있다.

그런데 문명사회이후의 이런 줄기찬 접근방법이 과연 모든 현상을 올바로
풀어줄 수 있는 패러다임이냐 하는데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말하자면 전체는 부분의 종합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종합 이상의
것이라는 해석이다.

즉 어떤 현상의 수많은 구성요소를 규명하여 해답을 얻는 근대과학의
요소환원론으로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여러 현상을 해명할 수 없다는
엄청난 도전인 셈이다.

"복잡계"는 살아있는 생물이나 움직이는 현상은 많은 부분들이 상호작용을
하여 예상이외의 다이내믹한 자기조직력을 발휘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창조의 신비에 접근하려는 학문적 혁명이다.

주식시장의 경우도 수익률 등 여러 요소의 종합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처럼 상호작용에 의해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같은 조건하에서 나뭇잎이 떨어져도 뿔뿔이 다른 곳으로 흩어지는 현상은
무엇 때문인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론 이상의 것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다.

카오스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복잡한 것을 부분적 해석으로 해답을 얻기 보다는 복잡한 그대로의 전체를
보는 통찰력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이지만 통찰력자체를 어떻게 얻는
것인지는 미지수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복잡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