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식 <에너지경제연구원장>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국제수지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은 매달 쌓여가는 적자통계가 집계되자마자 국민들에게
알리고,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반도체나 자동차 등 우리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수출산업의 부진으로
인해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입액이
경기와 무관하게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과 함께 수입측면에서도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수입측면에서 국제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는 사치품 수입, 무절제한
해외 여행경비 및 송금 등이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성격은 다르지만 에너지수입 또한 막대한 규모 때문에
눈총을 받고 있다.

96년도에 에너지수입액은 총 2백40억달러에 달해 우리나라 총수입액의
16%에 달하는 규모이다.

97년도에는 에너지 수요증가를 감안할 때 2백75억~2백90억달러 정도의
외화가 에너지수입에 충당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너지 수입은 불요불급한 사치성소비재 수입과는 달리 약 절반정도가
산업생산에 필수불가결한 원료 및 연료로서 중간투입물로 사용되고, 나머지
절반도 수송용 연료나 가정및 상업부문에서 난방용 연료로 사용되는
것으로서 생활필수품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소비는 우리가 원한다고 하여 단기간에 쉽사리 줄일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총생산의 부가가치 한단위창출에 투입되는
에너지량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2배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거시지표 결과는 에너지다소비형 산업구조, 그리고 같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해 생산한 수출품의 가격수준이 비교대상국에 비해
저렴한데 기인하고 있으나 97%이상의 에너지를 수입해서 사용하는,
기름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임을 인식할 때 우리경제의 에너지집약도는
지나치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저가격-과잉소비-비효율로 진단되는 에너지부문 자체의 경제논리보다는
국제수지개선 차원에서 에너지소비절약 과제가 대두되고 있으나, 어쨌든
우리 국민 모두가 에너지소비절약에 지금처럼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처럼 주기적으로 에너지소비절약이 강조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그동안의 에너지소비절약노력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소비절약에 관심을 갖게한 일차적 원인인 유가급등
걸프전쟁 경기침체 등의 상황이 해결되면서 동시에 소비절약에 대한 관심도
없어져버렸다.

그 결과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구조는 이전상태로 복귀하게 되고 향후
유사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다시 국민들에게 에너지소비절약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필자는 그 원인을 에너지소비절약이 그 자체로서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물가안정이나 국제수지개선을 위한 보조수단으로서
자주 활용되는 데서 찾고 싶다.

이미 경험한바 있듯이 국제석유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우리들은
각종 긴급대책을 통해 에너지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시도하였다.

자동차 10부제운행, 심야영업시간 단축, 네온사인규제 등의 한시적인
단기대책과 함께 장기적으로 에너지이용효율향상을 위한 각종 대책들이
강구되어 지금도 지속적으로 시행중에 있다.

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에너지소비증가율은 급속한 경제성장의
결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여왔고,에너지 이용효율성
측면에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실정이다.

여기에는 지난 고도성장기에 우리가 취한 에너지가격정책을 위시한
각종 에너지정책에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

특히 산업정책이나 지표관리위주의 거시경제정책의 하부수단이 되어
있는 에너지정책의 위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우리와 같이 거의 전량의 에너지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해다 쓰고 있는 나라이다.

그들 역시 국제석유위기와 같은 외생적인 충격이 가해지면 경제가
휘청거리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경기의 순환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지표의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에너지절약이 정책수단으로 거론되지는 않는다.

에너지절약정책은 국민 개개인및 산업체 하나하나의 에너지사용패턴을
고쳐나가는 경제의 효율개선책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튼튼한 경제를 위한 에너지절약정책이 캠페인이나 에너지소비를
일시적으로 억누르는 비상대책의 반복으로는 곤란하다.

그리고 지금 시행하고 있는 에너지이용설비를 점차 고효율 설비로
바꿔나가는 금융 세제상의 지원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에너지가 산업활동 또는 국민의 소비생활에 기여하는 만큼의 기회비용을
반영하는 수준에서 가격이 부과되어야 에너지소비 역시 적절하게
이루어진다는 경제의 기본원칙에 바탕해야만 각종 에너지절약정책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절약은 에너지수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추어 볼 때
소비자나 기업에 "근검절약은 미덕" 또는 "지금은 위기상황"이라는 차원에서
권장할 사항이 아니라 우리가 보다 체계적인 정책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 출발은 에너지정책의 위상회복이 되어야 하고,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가격의 현실화에 기초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에너지소비가 유도될 것이며, 국제수지의
주요 악화요인인 에너지수입액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