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이 올 임금인상 가이드 라인 설정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30대 그룹을 중심으로 임금동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경총 가이드
라인도 "동결"쪽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지만 대기업에 비해 임금이
턱없이 낮은 중소기업들의 처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어서다.

노총(18.4%)과 민노총(10.6%)이 모두 임금 가이드라인을 이미 발표했으나
경총은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현재 재계에선 경총이 금년 가이드라인을 0%로 동결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우세하다.

이유는 이렇다.

전경련이 회장단 회의 등을 통해 임금동결을 천명한 마당에 경총이
가이드라인을 높여서야 되겠느냐는 것.

경총이 가이드라인을 높였다가는 자칫 대기업들의 임금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경총도 내부적으론 동결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 그동안 가이드라인을 산출하던 방식에선
탈피할 생각이다.

작년까지는 생산성 향상분에서 자본의 생산성 기여도를 빼고 물가상승을
고려해 임금인상률을 산정했었다.

이렇게 따지면 호봉상승분을 제외한 임금인상 상한은 6.3%가 나온다.

작년의 4.8% 보다도 높다.

하지만 여러 경제여건상 0%나 3%이하선에서 실제 가이드라인이 잡힐
것이다" (조남홍 경총부회장).

사실상 동결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총이 선뜻 "임금 동결"을 외치지 못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경총은 전경련과 달리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

대기업과 임금격차가 심한 중소기업들에 까지 임금동결을 유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지적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경총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의존도가 대기업보다 높아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경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예 나눠 각각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거나 "0%~몇%"식으로 범위를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물론 경총의 가이드라인이 어떤 구속력이나 강제성을 갖고 있는 "불변의
원칙"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임금협상 테이블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경영자들에겐 경총의 가이드라인이 심리적 마지노선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결코 쉽게 생각해 결정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란 뜻이다.

"경제상황 전체를 감안하자면 동결로 가야 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을
생각하면 몇%라도 인상여지를 주지 않을 수 없어 정말 고민이다"
(경총관계자).

최근 경총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실토다.

어쨌든 경총은 임단협 시즌 직전인 이달말께는 장고를 끝내고 가이드
라인을 확정, 발표한다는 방침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 차병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