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발표된 한보부정 관련 수사결과를 놓고 꽤나 큰 거물들의
구속기소에 주목하면 그만 하면 됐다는 평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더 큰 반응은 권력형 부정수사에 따르는 예의 갈증 정도가 아니라
정권차원을 들먹이는 불평의 소리마저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수사개시 24일만에 나온 19일 발표를 액면대로 중간발표라 받아
들인다면 금후 검찰이 하기에 따라선 좀더 본질에 접근한 결실을 기대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물론 한보사건에 대한 정부나 국회 또는 금융당국의
기본자세가 불변하는 한 그런 기대를 거는것 조차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사건이 인지되고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국민을 계속 안타깝게 만든 것은
초점을 벗어난 여러 당로자들의 대처다.

수사착수부터 대통령의 엄단지시를 신호로 가능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검찰수사는 그야말로 외압을 무릅쓰고 사건의 내면을 깊이 파헤쳐
유사사건의 재발 방지에 노력하는 빛은 찾기 힘들었고 매스컴 카메라에
초점을 맞추는 전시효과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지울래야 지우기 힘들다.

사실상 기업에 생사여탈권을 행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행정부는
더 한심했다.

불똥을 피하는데 온 신경을 쓴 나머지 이번 국민에게 심어준 실망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만큼 깊다.

그 근인은 뭔가.

한마디로 원가개념이라곤 전무하다 할 정도로 천문학적 금액의 교제비를
써가며 기업을 한다고 한 정태수씨의 무모한 과욕에 휘말려 5조원 전후
금융이 수삼년간 쏟아져 나가도록 감독당국은 몰랐다는 강변을 어느 누가
믿겠는가.

만일 대통령에서 시민에 이르도록 이번 사건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지 않고
위기를 모면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유사사건은 반드시 재발할 것이다.

똑같은 과오를 이처럼 무한 반복한다면 나라는 어찌 되는가.

OECD탈락 정도가 아니라 일찍이 선진권에 진입하다 추락한 라틴 3국의
전철 답습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얻어야 할 교훈 가운데 으뜸은 말그대로 정경유착의 단절이다.

정치자금 떡값은 부소추라는 공식이 저처럼 태연스레 통하는 한, 특히
대통령을 위광으로 재정금융 특혜가 농간을 계속 하는 한 정권을 아무리
바꿔봐야 도로아미타불이다.

둘째 공직자는 물론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부패 불감증이 이처럼 확산되고
깊어진다면 금융부정뿐 아니라 사회가 송두리째 썩어 나라의 전도를 막는다.

누대의 정권을 거치면서 부패를 불가피 용인하는 심도와 범위가 너무
커져 이제 수천만원 수뢰 횡령 착복은 죄도 아니라는 의식이 만연한다.

모두가 책임질 망국지병이다.

셋째 모든 제도를 고무줄처럼 권력의 편의와 뜻에 맞춰 운영하려는
뿌리깊은 발상이다.

법치라면서 성역이 실재한다는 국민의 불신을 청산하지 않고는 권력형
부패추방은 백년하청이다.

검찰도 국회특위도 근본을 캠으로써 결함을 메우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