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권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독일의 투자자금과 기업들이 중동부유럽지역으로 몰리면서 교역이 활발해
지는 등 이른바 "마르크블록"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중동부유럽에 끼치는 마르크경제의 엄청난 영향력은 여러 무역통계에서
바로 드러난다.
중동부유럽 12개국(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의 대EU
(유럽연합) 수출입 가운데 독일의 비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 95년 한햇동안의 중동부유럽과 EU간 수출입 총액 1천1백20억달러
가운데 독일과 이뤄진 교역분이 52%로 절반을 넘었다.
중동부유럽의 외국인직접투자액에서 마르크자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 90~95년까지의 6년동안 중동부유럽으로 향한 외국인직접투자액은
모두 2백44억달러중에서 19%가 독일에서 나온 자금이었다.
독일 다음으로는 미국 및 오스트리아의 투자자금이 많았으며 구성비는
각각 14%인 것으로 나타났다.
헝가리의 경우 독일기업의 합작투자법인체가 현재 6천개이상이 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시중은행들은 중동부유럽에서 독무대를 구축하고 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엔 6개의 독일시중은행이 진출해있다.
독일의 바이예리시 란데스방크는 헝가리 시중은행을 인수했다.
독일의 코메르츠방크는 네덜란드 및 미국계은행들을 제치고 체코
프라하에서도 가장 큰 외국계은행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중동부유럽에서 "마르크블록"이 탄탄하게 자리를 잡는 배경에는
당연히 독일이라는 나라가 중부유럽국이라는 지정학적 요인이 먼저 제기된다.
특히 구공산권 국가중에서 경제성적표가 우수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는
체코와 폴란드는 바로 독일에 붙어 있다.
독일의 자금 및 기술과 체코 폴란드같은 이웃국의 저임인력 및 급팽창하는
소비재시장이 결합돼 나타나는 시너지효과를 보기위해 마르크자금이 대거
중동부국으로 찾아 들어가고 있다.
런던에 있는 경제예측기관인 "인디펜던트 스트래터지"의 동유럽전문가
제임스 리스터치즈는 "동유럽국들이 독일을 중심으로 공동 번영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임스 리스터치즈는 독일기업들이 이웃국의 저임을 십분활용해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폴란드 등은 마르크자금을 유치해 실업난을 해결하고 경제
성장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마르크블록을 한층 더 공고하게 만들기위해 최근들어 중동부
유럽국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권을 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독일정부 입장에서 볼때 중동부유럽국이 NATO 회원국이 되면 폴란드
헝가리같은 구공산권국가들이 러시아와 외교안보상의 관계마저 완전히
청산할 수 있어 그만큼 독일중심의 마르크블록이 더 강화되는 전기를
맞을 수 있다.
실제로 헬무트 콜총리를 비롯한 독일지도자들은 요즘 구공산권국의 NATO
가입문제에 외교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중동부유럽국가의 옛 맹주인 러시아측의 반대입장도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는 점에 비춰 오는 98년께부터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3국이 선발대로
NATO에 가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충돌해 대량 사상자를 낸 역사가 있는 독일과 러시아는
현재까지 양국의 국민감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독일이 동유럽국가를 NATO로 끌어들이면 결과적으로 러시아
국경간에 "안보 완충지대"를 설정하는 셈이다.
헬무트 콜정부는 마르크블록을 강화하기위해 중동부유럽국에 EU가입
티켓도 발급해 주려고 서서히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EU가입의 경우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엄청나게 걸려있어 기존 EU
회원국들의 반대가 만만찮다.
중동부유럽국이 회원국이 되면 EU기금이 대부분 후진적인 중동부지역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는 기존 회원국의 우려로 인해 EU티켓 발급건은 현재로서는
요원한 과제가 되고 있다.
동유럽에서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을 걱정하는 프랑스의 "외교력"도 마르크
블록의 앞날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비공식적으로 독일의 마르크블록 형성을 히틀러시대의
동진정책에 비유하는 등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마르크블록이 강해질수록 상대적으로 유럽에서의 프랑스 지위는 떨어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계산에 따른 것이다.
작년 여름 아우슈비츠의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조심스럽게 폴란드를
방문한 헬무트 콜총리는 기대밖의 환영인파로 경호팀이 진땀을 흘렸다.
폴란드에서의 마르크화 위력을 반증한 것으로 풀이됐다.
마르크블록이 국제사회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점을 예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양홍모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