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금융실명제 토지실명제 지방자치제 등의 여러
가지 좋은 제도들이 시행되어 외견상으로는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금융실명제 이후에 아직도 갈 곳을 바로 찾지 못해 갈피를
못잡는 자금들이 지하1층에서 지하2층으로 숨어들었고, 그러고도 남은
돈들은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가 아무리 일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1만달러를 넘어 섰다고 하지만
언제부터 해외골프 여행을 당당하게 떠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는가.

신문의 여행사 광고란을 살펴보면 제주도 골프관광을 비롯한 해외
유명지역의 골프관광이 경쟁적으로 수를 놓고 있는 상황이며 실제로
예약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더이상 특기할 만한 사항이
아니다.

골프관광 뿐만 아니라 허니문 여행을 위시한 여타의 관광도 비슷한
실정이라는 것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사항이므로 구태여
나열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토지실명제의 경우 금융실명제 보다는 다소 빠르고 순조롭게 정착되어
가는 분위기인 듯하나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보완하여 완전히 뿌리를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모든 기업이 비슷한 실정이겠으나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때면
항상 땅을 담보로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게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내놓을 땅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기존사업을 확장하거나 신규 아이템을 개발한 후 정부에서 제공하는
정책자금을 시간과 공을 들여 어렵사리 배당 받은 후 은행에 대출 신청을
하면 종착역인 은행에서는 으레 담보를 요구하게되고 담보부족으로 인해
앞서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종종 발생되어 기업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크나큰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모름지기 은행은 땅을 담보로 하는 대형 전당포 역할을 할 것이 아니라
신용을 담보로 하는 명실상부한 신용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대부분의 은행이 땅을 담보로 요구하는 한 땅부자와 은행은 공존공생
관계를 지속하게 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어 못가진 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골이 깊어 갈 뿐이다.

선진국처럼 은행이 땅을 담보로 잡지 못하도록 하면 땅부자들은
세금때문이라도 땅을 팔아야만 하게돼 땅값은 안정을 찾을 것이며
은행들도 신용평가에 더욱 치중하게되어 국가적으로 장려해야 할
벤처기업 및 유망중소기업들이 명실상부한 본연의 업무에 몰두하게
되어 국가경쟁력에 일조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서 미꾸라지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경제위기는 고전적 경제이론 보다는 시스템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법이나 제도라 할지라도 그 운영이나 절차가 시스템이론에
근거하지 못한다면 사장(사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이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가라고 할지라도 경제문제에
관한한 정치논리가 앞서는 것은 절대금물이라고 본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정치는 여전히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경제는 G7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유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최근에 개정노동법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었다고 해서 사회
각부문이 상당히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이는 법 개정이나 통과 이전에 국회에서 시스템이론에 근거한 충분한
사전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잘못도 있거니와 이러한 시스템이론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여당의원들이나, 합리적인 대안제시를 못하고
반대하고 있는 야당의원들을 국회로 보낸 국민들의 잘못도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의 노동자들도 현시점에서 차분하고 냉철한 감각을 회복한후
시스템이론에 근거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때라고 판단된다.

어차피 법이란 시대상황과 주변여건에 의거하여 유효적절하게 개정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지방자치제 실시이후 자치단체별로 지역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으며
중앙정부 또한 부처이기주의가 심심찮게 돌출되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짧기때문에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덮어 두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현상들이 많다.

모든 것이 남의 탓이다 보니 제2의 성수대교 사건이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대형사고를 미리 걱정케 되는 것은 기우일까.

남이야 어찌됐든 내가 우선 잘된후 여유가 있으면 남을 돕겠다는
생각이전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고
내가 남을 도와서 남이 발전하고 남이 나를 도와서 내가 잘되는
세상은 언제쯤 올것인가.

모든 규율과 제도가 시스템이론에 근거하여 확립되어야 하겠지만
이보다 앞서 우리 국민 모두가 시스템적 사고방식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