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마음이 얼어붙어 있어도 자연의 절기는 어김 없이 찾아든다.

오늘이 24절기 중 첫번째인 입춘이다.

태양의 황경이 3백15에 와 있는 때로 봄에 접어드는 절후가 된다.

음력으론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또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재봉춘이라 한다.

올해는 입춘이 섣달에 든 경우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이므로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 중의 하나가 입춘첩을 써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입춘축이라고도 한다.

각 가정에선 대문기둥이나 대들보.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 붙인다.

또 옛날 대궐에선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중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다.

이를 춘첩자라 불렀다.

한편 제주도에선 입춘일에 큰굿을 했는데 "입춘굿"이라 했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인 수신방이 맡아서 하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했다.

이때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해 걸립을 하고 상주.옥황상
재.토신 등을 제사하는 의식을 했다.

또 입춘일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내는 농사점을
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봄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봄의 온화하고 화창한 경물에 접해 느낀 흥취이고 다른 하나는
봄의 화창함이나 순환성에 비해 괴로움 많고 유한한 인생에서 오는
비애감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문학장르 시조중에 이정보같이 봄의 화려하고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노래한 선비가 있는가 하면 이조년처럼 봄밤의
애상적정서를 표현한 경우도 있다.

결국 정서란 대상 그 자체에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 고전작품들은 가르쳐주고 있는 셈이다.

영국 시인 워어즈워스는 "봄철의 숲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인간에게
도덕상의 악과 선에 대해 어떤 현자보다는 더 많은 것을 가려쳐 준다"고
노래했다.

올해 우리 봄은 한보사태, 노동법파문, 실업자 증가 등으로 "봄은
봄이로되 봄같지 않다" (춘래불사춘)는게 일반적 심정인 것 같다.

봄다운 봄이 언제나 오려는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