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일이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싶은 불안스런
요즘이지만 그중에도 국회의 하는 짓은 한심하다 못해 갈수록 염증을
돋운다.

연말국회의 날치기 운영으로 파업사태까지 유발했으면 우선 모여서
논의부터 했어야 옳다.

그 위에 한보사태가 겹쳐 나라가 이 지경이면 국민대신 국사를 의논하는
존재 이유의 국회는 설령 누가 말린다 해도 벌써 의사당안에 뛰어 들었어야
백번 옳다.

소집 이유가 2중3중 겹쳤는데 본론도 아닌 소집자체의 협상이 다시
문제를 만드는 몰골은 추해도 너무 추하다.

이러다가 국민의 국회불신이 정치불신으로 이어짐은 그렇다 쳐도
체제불신으로까지 가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상황이 이런 속에 국회소집 지연의 내면적 이유가 다른데 있음을 아는
국민들은 분노와 좌절에 떤다.

3당 총무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카메라만 의식, 나란히 앉은지
여러날이지만 각당의 마음이 제사보다 잿밥에 있음을 드러낸지 오래다.

국회를 열어 난마처럼 얽힌 사태를 파헤쳐 대안을 만드는 본업은
그리 달갑지 않다.

서로 내몸은 사리면서 상대에 결정타를 입혀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만이 목적이다.

노동법 정국에 있어서도 어느 당 하나 딱부러지게 나서서 나라를
위해선 이 선택밖에 없다는 당당한 태도로 사태를 수습하기 보다는
노-사 어느 쪽에도 잘못 보이면 손해라는 비겁이 바탕에 깔려 왔다.

한보사건은 한술 더뜬다.

꿩이 숨으며 머리만 감추듯, 각 당이 목청높여 나쁜 짓은 저쪽만 했다고
윽박지르지만 실은 한보 불똥이 이쪽으로 튈세라 미리 받아치는 속셈임을
이미 많은 시선들이 알고 주시하고 있다.

합법적인 의원 개별 후원금으로 한보돈을 받은 사실을 밝힌 의원은
극소수란 점을 현장취재한 한 신문보도가 돋 보인다.

총무회담의 쟁점인 특위 인원수,특별검사제 채택문제도 실은 덮어
씌우기를 위한 당간의 삿바싸움 외엔 다를 것이 없다.

특검제는 차후를 위해 법제화할 과제이며 이번엔 어제 선보인 수정제의를
받아들여 출로를 열어야 한다.

얼른 보면 이번 국회를 대선주도 선점의 호기로 삼으려는 각당 전략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12월 대선은 10개월여, 멀다고만 할순 없다.

하나 국가경영을 자임하는 당으로선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아둔한 계산이다.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산업경쟁력 제고, 노동법 체계손질, 금융개혁등
제반 경제현안도 그러려니와 벼랑에 온 대북전략 수립같은 중대과제를
외면하고 어찌 대선다툼 시험이 따로 있는가.

이런 현안 하나하나에 각당이 대안을 내놓는 것이 다름 아닌 정당의
경쟁이고 그 결과누적이 다름아닌 대선 주도력이다.

당 발전, 대선승리를 위해서도 모든 국사는 의회안으로 수렴돼 그
안의 점수로 여야가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난국에서 나라를 건지고
모두가 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