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회사의 판매사원하면 우선 떠오르는 모습은 억척스런 또순이 아줌마다.

그런데 수줍음 많은 20대처녀의 몸으로 지난해 무려 1억5천여만원어치의
가전제품을 팔아 대우전자의 "미스 판매여왕"이 된 아가씨가 있다.

대우전자 강남지사 노량진 가전마트의 김현정씨(24)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그녀가 판매한 물량은 가전제품 평균가격을 35만원으로 볼 때
이틀에 무려 3대꼴이다.

지난 연말에는 한달동안 한대에 1백만원을 훨씬 넘는 냉장고만 한꺼번에
7대나 판 적도 있다.

그렇게 번 돈은 월평균 1백80만원정도.

웬만한 기업체 중견간부급의 소득이다.

김현정씨의 비결은 무엇보다 듣는 이의 근심 걱정을 한꺼번에 날려주는
"무공해 목소리"에 있다.

그녀의 음성은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를 때도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목소리가 고운 것도 고운 것이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남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고운 마음이 목소리에 실려있는 것이 더 큰 비법이라고.

그녀가 가전 영업에 "텔레마케팅"기법을 도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녀가 함부로 일반 사무실이나 가정집을 들락거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본래 조용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무턱대고 고객을 찾아가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그녀가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세운 전략도
역시 신세대답다.

우선 회사의 컴퓨터를 이용, 각 기업체에 E메일(전자우편)을 띄우는 것과
대우전자의 고장서비스 처리리스트를 보고 전화를 거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새로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다.

고객과 "텔레파시"가 통하면 물건은 저절로 팔린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나는 고객들을 사무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오빠 언니 친척아저씨처럼 여긴다.

거의 대부분 제품의 사용법과 특징 등을 꿰고 있는 그녀의 지식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녀가 가전 영업을 결심한 것은 지난 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체에 들어가 사무실생활을 1년반 정도
경험한 뒤끝이었다.

대우전자 판매여왕을 몇년간 휩쓸고 지금도 1년에 십수억원 어치를
판매하고 있는 백숙현실장이 평소 그녀를 눈여겨 보다 같이 일하자고 권유를
했다.

"우선 직장생활의 틀에 박힌 사무실 분위기가 싫었어요.

영업을 하면 발전성과 비전이 있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그녀를 대우전자 모니터사원으로 뽑아주고 이것저것 자상하게
돌봐주는 백숙현씨를 친언니 이상으로 믿고 따른다.

"서두르지 말아라" "맡은 일에 충실해라" "목표를 세워라"는 언니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사무실에서도 항상 성실한 생활과 밝은 목소리로 언니들의 귀염을 독차지
한다.

영업사원이긴 하지만 정시출근 정시퇴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

자신을 찾는 고객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내 일은 내가 처리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강하다.

그래서 "아파도 아프질 못한다"고.

사무실의 언니들이나 자신을 찾는 고객들을 실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인 "프로 세일즈우먼"으로 자리잡은 그녀의 꿈은 야무지다.

우선 올해 3억원, 내년에는 8억원어치의 물건을 팔아 명실공히 판매여왕에
등극하는 것.

그리고 이같은 실적을 몇해 더 올려 정식으로 대우전자 직원으로 인정받고
백숙현 실장처럼 "강사"로도 나서고 싶다고.

가전제품 영업에서 "텔레마케터" 김현정씨가 일으키는 무서운 20대의
싱싱한 돌풍이 주목된다.

< 글 김주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