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하이테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90년대에는 TV만 켜면 방송에서 핑크빛처럼 밝은 90년대를 전망했고
신문만 펴면 지면마다 수출의 신화들로 가득 했었다.

그러나 최근 몇년들어 찬란했던 수출의 신화는 꼬리를 감추었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마저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그 많던 우리 상품의 고객을 무엇이,누가 쫓아버렸는가.

혹시 우리 모두가 무의식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황금같은 고객을
쫓아버렸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난 날의 조그마한 성공에 도취되어 무섭게 발전하는 경쟁국가들을
이겨낼 경쟁력 향상을 게을리한 결과로 변화를 기대하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낮은 품질과 낡은 방식의 상품에 대해 불만하는 고객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아낌없이 쓰고 싶은 비용을 모두 쓰고 그것을 제품의 가격에
반영한 높은 가격으로 고객을 쫓지는 않았는지.

우리를 찾아온 외국 바이어와 언어소통마저 되지 않는 무례함으로 고객을
쫓아버리지는 않았는지도 되새겨 봄직하다.

관광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볼거리도 없고 게다가 불친절해 찾아온
관광객에게 두번 다시 오고싶지 않도록 쫓아버리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고객을 쫓는 일을 반복하고 있으면서 수출이 안된다,
관광객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탄만 되풀이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업들은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열심히 조사해 끊임없이 신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노력보다는 옛날 상품을 가지고 고객이
제발로 찾아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초라한 재래식 판매 점포에서 옛날식의 판매 방식으로 불량한 서비스를
되풀이하며 그나마 찾아온 고객마저 쫓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끝까지 참고 무엇인가 하나라도 사고자 하는
고객이 1대1로 판매사원에게 도움을 청할 때 그들까지도 무관심과 불친절로
철저하게 고객을 쫓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필자는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 기업을 컨설팅하면서 어렵게 고객을
모셔와서 너무 쉽게 고객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됐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사실을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지난 80년대 중반에 경제불황의 늪에 빠져 일본 기업에 자국
시장을 내주고 기업들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던 때가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상무장관이었던 맬컴 볼드리지씨가
경영혁신을 통해 경쟁력이 크게 향상된 기업을 선정해 품질경영대상을
수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일명 맬컴 볼드리지 상이라고 불리는 이 상은 가장 모범적인 경영모델을
설정, 전문가의 심사를 통해 최고의 기업을 선정하고 그 기업의 경영비법을
다른 기업이 학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가와 기업이 혼연일체가 되어 기업 경쟁력 향상에 집중적인 노력을 한
결과 90년대 들어 미국 기업들은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미국 경제는 다시 회생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를 들수 있을 것이다.

오일쇼크로 세계적인 불황이었던 때에 적자에 허덕이던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는 모든 과정에서 고객의 눈으로 바라보고 고객중심적으로
경영혁신을 실시함으로써 흑자로 전환했을 뿐만 아니라 위기의 순간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회로 만들었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는 고객만족도 조사를 통해 고객과 스칸디나비아
항공사가 만나는 모든 과정을 1백47개의 고객접점(MOT : Moment of Truth)
으로 나누고 이를 혁신하는 과정에 모든 사원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고객중심 경영혁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고객을 쫓는 기업이 고객을 사로잡는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기업내
모든 구성원들이 철저한 고객정신으로 다시 무장되어야 한다.

항상 위만 쳐다보고, 위에서 지시하는 일만 처리하는 "천수답"형 사원은
고객을 내쫓는 대표적인 사원이다.

위만 쳐다보던 사원들은 이제 시선을 돌려 고객을 쳐다보고 고객중심적인
사고로 전환함으로써 고객을 위해 행동하는 사원으로 변화해야 한다.

모두가 위기를 느끼는 지금이야말로 고객을 쫓는 국가에서 고객을
끄는 국가로, 고객을 쫓는 기업에서 고객을 사로잡는 기업으로 변화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깊게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