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에 한보철강 관련 "빚떠넘기기 전쟁"이 한창이다.

금융계에 따르면 한보철강이 부도처리된 지난 23일이후부터 은행들간에
한보그룹과 관련된 지급보증서 지급결제를 둘러싸고 "결제해달라"
"못해주겠다"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동화 하나 보람 등 후발시중은행들과 강원 경남 등 지방은행들은 한보철강에
대출을 해주고 받은 지급보증서를 만기가 되지 않았는데도 발행은행에 제시,
보증책임을 이행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은행은 지급보증규정에는 "당좌거래정지 등 기한이익을 상실한 경우엔
지급보증서의 만기에 관계없이 보증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제일 산업 조흥 서울 외환 상업 충청 농협 등 거액의 지급보증서를
떼어준 은행들은 "만기일 전에는 보증책임이행 의무가 없다"며 결제를 거절,
담당자끼리 삿대질을 하는 등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이처럼 지급보증이행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보철강에 대한
"재산보전처분"이 내려지면 지급보증을 포함한 모든 채권채무가 전액 동결
되기 때문.

즉 지급보증서를 갖고 있는 은행으로선 채권채무가 동결되기 전에 돈을
받아내야만 부실대출을 줄일수 있는 반면 발급은행들은 이때까지만 버티면
당장의 자금손실을 줄일수 있어서다.

지난 10일 현재 은행들이 발행한 지급보증서는 총 1조2천7백60억원으로
대출금 2조4천87억원의 절반에 달하고 있어 지급보증서를 현금화할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은행들의 부실여신규모는 판이하게 달라질수 있다.

특히 강원 경남 동화 하나 보람은행은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금이 각각
3백억~7백20억원에 달하고 있지만 전액 다른 은행의 지급보증서를 갖고 있어
순여신은 한푼도 없는 상태다.

반면 제일은행은 지급보증이 5천7백4억원으로 대출금(5천4백73억원)에
육박하고 있고 서울은행은 대출금(9백1억원)보다 지급보증(1천1백24억원)이
더 많은 실정이다.

금융계에서는 이에 대해 지급보증서는 회사의 부도에 관계없이 발급은행이
결제해주는게 당연하다며 만일 법적소송으로 비화되면 발급은행이 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발급은행들이 지급을 거절하고 있는 것은 결제를 최대한 늦춰
그동안의 이자만이라도 지급을 줄여보겠다는 계산때문으로 보인다.

지급보증서 결제를 둘러싼 은행간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어서
자금시장에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