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답답한 요즈음이다.

노동법파문으로 파업진통을 겪은 산업현장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싶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들 주변에는 일자리를 잃은 "고개숙인 남자"들도 늘어만 간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걱정도 뒷전으로 밀려버린 듯한 느낌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는 우리나라의 개정노동법이 청문회에 올려
졌다.

노-사-정 대표가 참가해 회원국대표들에게 서로 다른 입장을 "해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것 역시 무척 짜증나는 일임에 틀림없다.

다행히 여-야 영수회담이 열려 경색된 정국에 다소 숨통이 트일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할 산은 겹겹으로 쌓여있다.

어느것하나 시원하고 신나는 일이 없다.

22일에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금융개혁위원회가 발족한다.

박성용 전경련부회장(금호그룹 명예회장)을 위원장으로 모두 31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수요자중심의 금융개혁"을 주도
하게 된다.

소위 한국판 "빅뱅"을 추진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최근의 분위기 탓인지 그 중요성에 비해 이해당사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잘되겠느냐"는 것이다.

빅뱅이라 이름붙일 만큼의 개혁에 대한 기대는 점차 멀어져가는 듯하다.

한승수 부총리를 비롯한 정책당국자들도 빅뱅식개혁은 없고 그동안 재정
경제원이 추진해온 금융개편안을 토대로 추진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바
있다.

벌써부터 개혁의지가 퇴색된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갓 태어난 금개위의 활동결과를 예단하는 것 자체가 다소 성급한 감이
있고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또 짧은 기간에 엄청난 변화와 개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가시적인 최소한의 성과라도 거두기 위해서는 구체적 대안검토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몇가지 과제들이 있다.

첫째는 개혁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이다.

이것은 다분히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일이다.

김대통령의 임기가 1년남짓 남기는 했지만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실질적인 정책개혁을 어떻게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문이다.

소리만 요란하고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 반대의 걱정도 있다.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남지 않았다고 해서 할 일을 안하는 것은 정책의
영속성 측면에서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임기말이기 때문에 과감한 조치와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도 해본다.

여기에서의 걱정은 무리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여지는 좁지만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정치적인 금융개혁조치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것이 금개위가 할 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개혁위를 구상한 청와대가 분명하게 밝히고 넘어가야할 일이다.

금융개혁의 명확한 한계와 목표가 설정돼야만 이해당사자들의 불필요한
불안과 동요를 방지할 수 있고 지나친 기대나 그 결과에 대한 실망도 줄일
수 있다.

개혁추진에 대한 이해와 설득이 선행되지 못한다면 그 개혁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두번째는 개혁의 목표와 방향설정에 대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수요자중심의 금융개혁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냥 "금융개혁"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 혼란
스런 면이 있다.

금융개혁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 당위성은 코앞에 닥친 금융시장 전면개방과 국내 금융기관들의 비효율
성에서 찾아야 한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은 외국업체들에 비해 형편없이 뒤져있다.

규모에서 밀리고 경영기법도 뒤져 있다.

수익성도 떨어지는 상황이다보니 수요자들에 대한 서비스도 엉망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쟁력약화의 원인을 찾아 고쳐 나가자는 것이 금융개혁의 본질
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역시 정부의 관여와 각종 규제에서 비롯된 것들
이다.

때문에 금융개혁의 목표는 금융기관의 경쟁력강화이고 그 수단은 자율과
책임경영을 통해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경쟁력강화의 첫째 요건은 수요자들에 대한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고 이를
위해서는 합병.전환을 통한 대형화 전문화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는
귀결이 나온다.

여기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금융의 공공성과 기업성을 따져 지나친
규제를 풀고 창의적인 경영이 가능토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주인을 찾아주어 책임경영을 유도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어 논의대상이 돼야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강화의 궁극적인 추진주체는 역시 금융기관 자신들이다.

금리인하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나 금융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은 스스로 해야할 일이다.

경영효율화를 위한 합병.전환이나 선진경영기법의 터득, 다양한 상품개발
등이 이런 유에 속한다.

이렇게보면 이번에 발족되는 금융개혁위원회는 구체안의 논의에 앞서 활동
범위와 목표를 보다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만 이해 당사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고 실효성있는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면 그렇지, 별 수 있겠느냐"는 반응보다는 "생각보다 실속이 있었다"
는 평가가 듣기에도 좋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