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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섬우화] (14) 제1부 : 압구정동 지글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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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배와 가끔 나누는 그러한 상담은 상당히 신랄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적 체면도 있고 교양과 지성을 갖춘 클라스의 나이든
    여성들이다.

    재산문제도 있고 쉽게 어떤 일을 벌일 수 없는 가장 딱한 독신녀들이다.

    공인수는 가느다란 한숨을 뱉으면서 압구정동의 황태자로 자처하는
    지영웅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공인수는 병원에 오는 많은 환자들중에 중독증상이 심한 많은 자제력
    결여 환자들을 만난다.

    알콜과 도박 아편중독, 또 비교적 새로운 전문성을 요구하는 병으로
    과식중독 쇼핑중독 섹스중독과 슈퍼우먼병, 즉 과대망상적인 극기력
    결여병을 들 수 있다.

    흔히들 여왕병 공주병이라는 것이 그 과에 속하는데 이 지영웅이란
    친구는 돈중독과 섹스중독, 또 아이러니하게도 황태자병까지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여러 현대적 중독증상을 심각하게 가지고 있는 그를 한심하고
    딱하다는 듯이 건너다 보다가 자기는 지금 사회문제연구가도 아니고
    신경정신과 의사임을 깨달으며 부드러운 말로 면담을 다시 계속한다.

    "제 질문에 솔직하게 토를 달지 말고 간단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횡설수설 옆길로 나가지 맙시다.

    왜 혼자 사는데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요? 부양할 가족도 없고
    하루 세끼 먹는것 뿐이고, 학교에서 크게 등록비 내고 공부하는 것도
    없지요? 좋은 옷을 사줘야할 와이프도 없고 돈 쓸 일이 너무나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박사님, 모두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차를 비앰더블류 7백
    시리즈를 타고 있어요"

    "놀라운 허영이군요"

    "그런데 문제는 그 차가 중고라서 그 사모님이 저에게 공짜로 주었지만
    한번 병원에 가면 돈을 물 먹는 하마처럼 잡아먹어요.

    차에 들어가는 돈만도 한달에 백은 돼요.

    이게 아주 고물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새 차를 뽑아줄 누님이 필요했던 건데 백옥자가 나를
    배신했어요.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문화인이 아니지요.

    참을 수가 없어. 나쁜 년. 내 서비스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그 말입니다"

    그는 금세 억제력을 잃으며 소리를 친다.

    사뭇 부르르 떨며 주먹으로 책상을 꽝 내리친다.

    공인수는 질색을 하며 벌떡 일어선다.

    "지영웅씨, 여기는 백옥자여사네 응접실이 아니라 병원의 진료실입니다.

    자아 심호흡을 하고 인내하면서 침착하게 진료를 계속해야지. 자아
    진정하고요"

    그녀는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금세 얼굴이 붉게 충혈되면서 눈에
    광기를 내뿜는 지영웅을 성난 스피츠를 어르고 달래듯이 진정시키면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사뭇 그녀는 지금 살인광에게 설교를 하는 신부님처럼 거룩한 마음으로,
    종류는 다르지만 여왕병에 걸린 슈퍼우먼이 파락호이면서 황제병에 걸려서
    최고의 과대망상과 콤플렉스사이를 오가는 환자와 대좌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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