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그는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기어코 가지고야
말았다.

그것이 장난감이든 옷이든 어린아이가 바라는 모든 것을 그의 할아버지는
애비없는 손주녀석에게 절대적이고도 맹목적인 아버지노릇을 하기 위해
오동짓달에도 미역을 감자고 하면 기어코 온천장에라도 데리고 가서
냉탕에서 수영을 시켰다.

열다섯살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만 해도 지영웅은 공부도 잘 했고
장난감도 없는것 없이 다 있는 오직 부모없는 문제아였다.

지병이 있던 할아버지는 그가 열다섯살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그는 할아버지가 하던 구멍가게를 정리해서 서울로 올라왔고
처음에는 야간이지만 중학에도 다녔다.

그러나 지영웅이야말로 잘 생긴 얼굴과 몸매때문에 잡지사 기자에게
발견이 되어 학생잡지에 표지 모델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그는 오빠라고
말하는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지내다가 보니 시골서 가게를 팔아
가지고 온 돈은 반년이 못되어 바닥이 났다.

마지막 남은 40만원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전국 일주를 불량학생들과
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엉망으로 꾀어들어갔다.

그는 여학생이든 아줌마든 닥치는 대로 상대했다.

남자의 애인도 되고 여자들의 애인도 되면서 스물이 넘으면서부터 애기
지글러로 서서히 길들여졌다.

그는 돈이 있는 여자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아냈다.

스물두살때 사귄 패션 모델 최미지로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최미지는 부자 할아버지 패트론으로부터 돈을 짜내다가 그와 제법
동거생활까지 했다.

그리고 지영웅에게 결혼까지 맹세시켰다.

그러나 최미지의 헌신은 지영웅이 컴퓨터 회사의 회장인 유산 상속녀
권옥경 여사와 놀아남으로써 끝이 났는데 그때 최미지가 칼로 그의 목을
찔러서 몇번이나 성형을 했어도 그의 왼쪽목에는 가늘게 칼로 찔린 자국이
있다.

그것이 그가 젊은 여자들과 어울린 마지막 사건이 되었다.

그는 나이 어리고 혈기왕성한 아가씨들은 절대로 안 사귄다.

나이 지긋하고 인심 후한 중년 여인들만이 그의 공격목표가 된 데에는
그런 무서운 과거가 있다.

그는 어떤 여자든 마음만 먹으면 유혹해내는 재주가 있다.

그것은 뛰어난 감각이며 집요한 마술적 힘이었다.

아무튼 지금의 그의 직업은 고상하게도 압구정동 인도어골프장의
코치다.

골프도 웬만큼 치고 입담도 좋고 가끔 난폭해지는 것만 빼고는 그 업소의
배사장에게는 보물단지 같은 미남 골프코치다.

배사장은 레이디 골프연습자들이 급증하자 코치를 선발해서 쓰는
조건중에 골프가 일류라든가, 아니면 미남이고 사교적이어서 레이디들에게
인기가 있는 지영웅같은 놈에게 최고의 월급을 주며 보너스도 비밀로
더 주고 채용하고 있다.

"박사님 제가 공짜로 골프코치를 해드린다는것 얼마나 저에게는 힘든
일인줄 아십니까? 우선 시간을 내기가 힘듭니다. 황금같은 시간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