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수는 지영웅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로 한다.

우선 그가 인간적으로는 그다지 나쁘고 악랄한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정서가 불안하고 머리가 나쁜것 같다.

그녀에게는 슈퍼 우먼으로서의 우월감이 개업을 하고 있는 동안 서서히
자랐기 때문에 아전인수에 빠질 때도 있다.

병원 건물을 지을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바짝 긴장하고 살았지만 이제
압구정동 7층건물을 지은지도 3년이나 지났고 나이 50이 되어오니 그녀의
굳은 의지도 조금씩 긴장감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할까?

"울지 말고 매너 좋고, 의사 말 잘 듣는 환자가 되어봐요"

"네 박사님, 매너 좋고 의사의 말 잘 듣는 환자가 되어보겠습니다.

박사님, 다시는 제가 우스운 짓을 하면 그때는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충고하고 보살펴주세유"

공박사는 웃음이 다시 피식 나온다.

도그마에 빠진 만족스런 미소다.

그가 급해지면 하는 고향 사투리는 오늘따라 그를 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지독한 편두통은요, 약을 가지고는 안낫습니다.

지금 경우는 백옥자여사가 돌아와야 나을것 같아요"

"맞습니다.

선생님 아니 박사님 맞습니다.

그 사모님처럼 돈 잘 쓰고 매너 좋고 정말 그리운 싸모님입니다"

공박사는 또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짓는다.

옛날 같으면 그는 그년이라고도 하고 "늙은 개호박같은 년이 나를
배신했어요.

나온다는 시간에 안나온거라구요.

그 전날 나에게 러브호텔에서 철석같이 약속했거든요.

그랜저 3000을 뽑아준다구요.

그리구 그렇게 사기칠 수가 있어.

내 편두통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됐다구요.

나쁜 년, 내가 가만히 있을줄 알구.최고의 서비스를 받구 얌체같이
줄행랑을 친 요년을 그냥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구.

그 남편을 찾아서 죄다 일러바쳐서 악살을 낼 거야.

개똥같은 년! 내 가만히 있을줄 알아"

그의 입은 언제나 그렇게 더럽고 험악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년 저년 대신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녀는 득의만면해서 점잖게 진료를 계속한다.

"편두통을 한알에 고치는 명약은 없어요.

그것은 다분히 정신적인 경우가 많아요.

물리적인 힘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균형을 찾아야 돼요.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믿는다고 했지요? 부처님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의 지금 그런 생활이 과연 옳은가, 바뀌어야 되나.

검소한 골프코치로서 성실하게 살아야 되지 않는가? 우선 부처님에게
의논을 해봐요.

남자 대장부가 몸판 대가로 돈을 받아낸다는 것이 죄악인가? 양심적인
일인가? 사람다운 일인가?"

열변을 토하면서 공박사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다소곳한, 아니 잘
길들여진 맹수처럼 순하게 엎드린 그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엽게
타일러주고 있는 자신을 본다.

그녀는 자신이 여왕병에 걸려 있는 여자답게 그의 확실한 변화에 큰
개가를 외친다.

의기양양해져서 기염을 토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