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 둔화인가 구조적인 침체인가.

올해 아시아의 경기부진을 둘러싸고 세계 경제계가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70년대 중반이후 연평균 7%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며 "글로벌 경제의
엔진"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아시아 경제에 처음으로 급브레이크가 걸렸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경제 우등생으로 꼽히던 싱가포르는 올해 4년만에 최악의 경기
둔화에 봉착했다.

한국과 태국에서도 주식시장이 20-30%나 폭락했다.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등도 경상적자급증(GDP의 8-10%)에 허덕였다.

이런 아시아 경제둔화의 주범은 전자시장 부진이었다.

반도체및 컴퓨터 공급과잉은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등 아시아 전자대국을
차례로 강타했다.

여기에 엔화가치가 떨어지면서 가격경쟁력이 하락,수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아시아 각국의 수출전선에 회생의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의 10월 상품수출은 7월보다 9% 증가했다(J.P.모건 추산).

수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던 연초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이제 침체국면은 끝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난 10월 싱가포트의 수출은 7월 이후 첫 증가세(1.1%)를 보였다.

전자산업의 수요회복 덕분이었다.

실제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자제품의 수요가 뚜렷히 살아나고 있다.

11월 미주지역반도체 BB율(출하액에 대한 수주액의 비율)이 올들어 최고치
인 1.15를 기록했다.

런던의 컨센서스이코노믹스사가 분석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중국, 홍콩, 대만등의 경제성장율은 올해 7.8%에서 내년도에는
8%로 다소 상승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등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올해 7%, 내년에는 7.1%로 성장률이 다소 회복될 것으로 점쳐졌다.

올해 아시아 경제를 주춤하게 한 장애요인은 전자시장 둔화뿐이 아니었다.

"긴축재정"도 한몫했다.

아시아 각국은 과열경기를 식히기 위해 씀씀이를 줄였다.

그러다보니 역내 수출입이 감소했다.

총 교역량의 34%를 차지하는 역내교역이 지지부진하면서 수출도 줄어든
것이다.

내년에 긴축의 고삐만 풀어주면 수출량은 곧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올해 아시아경기 부진은 일시적 현상이란 얘기다.

이에반해 아시아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그동안 아시아 경제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값싼 임금"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저임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선 자본및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한단계 올라서야
한다.

이 길목에서 <>부실한 인프라스트럭처 <>불안한 에너지공급 <>저급한
기술수준등이 아시아 성장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 되지 않는 고속성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는게
이들 구조침체론자들의 주장이다.

솔로몬브라더스의 이코노미스트 앤드루 프레리스도 "아시아 수출경쟁력
약화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지난 16일 세계은행이 연 "동아시아 경제기적은 끝났는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은 한국경제의 문제점으로 "4고"를 꼽았다.

인프라스트럭처, 임금, 토지, 금융등 4개부문의 고비용이 한국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관련, 미국의 유력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 근착지는 반도체뿐 아니라
철강등 한국의 주력산업이 일제히 침체에 빠져 있어 한두개 산업의 회복
만으로 한국의 경기가 쉽사리 되살아날 것같지 않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내년도까지도 본격적인 회복궤도에는 오르지 못할 것(HSBC제임스캐펠
이코노미스트 안소니첸)이란 분석도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올해 성적만으로는 아시아 경제엔진이 "재시동" 준비단계인지 "완전고장"
인지를 결론 내리기는 힘들다.

연말들어 시작된 수출회복 기미도 연말특수용 반짝 경기인지는 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년 한해는 아시아경제의 앞날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1년이
되는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