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섭 <대검 전산관리담당관>

인터넷을 통해 싱가포르 정부의 홈페이지(http://www.gov.sg)에 들어가
보자.

정부내의 모든 기관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알찬 것이 무척 부럽다.

이곳만 잘 뒤지면 싱가포르 정부에 대한 웬만한 정보는 다 찾을수 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싱가포르는 물류체계가 잘되어 있다지만 사이버 스페이스
상에서의 정보 유통체계도 그에 못지 않게 잘 정비돼 있다.

지난달 싱가포르에 출장가서 법원 검찰등 형사사법 전산망 구축현황과
장래계획등을 시찰하면서 그들의 정보화 추진 노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법원과 검찰등 사법기관에서도 세계 최첨단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각종 시스템을 형사지법 절차에 도입하고 있으며 모든 정부기관이
인터넷 홈페이지는 물론 내부에서만 유통되는 인트라넷(Intranet)을 구축,
실제업무에 이미 이용하고 있다.

대검찰청에서는 경찰 검찰 법원 교정에 이르는 일련의 형사사법기관을
연결한 "통합 형사사법 정보망"(Integrated Crininal Justice System)과
전자문서 전송시스템(Electronic Filing System)이 구축돼 실용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대법원에는 범죄정보및 수사 재판관련 자료를 즉석에서 조회할수 있고
대형 모니터 화면을 통한 원격재판이 가능한 21세기형 테크놀로지 법정이
실제 개정되고 있다.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국 법조계에서는 기초연구 내지 초기투자 단계에 처해있는 첨단
형사사법 전산시스템들이 싱가포르에서는 이미 정착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정보화를 추진하고 있는데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싱가로르는 인구 300만명의 도시국가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과 시스템 표준화를 손쉽게 달성할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실정과는 크게 다르다.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는 편의성도 그들이 정보화를 과감하게 추진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제일 인상적인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 관료들이었다.

공식방문 일정중 우리 일행에게 브리핑을 맡은 사람들은 대부분
3~5년가량 경력의 젊은 엘리트 관료였다.

그들이 대단히 명석하고 자신의 업무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첫눈에 알수 있었다.

또 싱가포르 정보화의 밝은 미래는 NCB(National Coumpter Boar )라는
기관의 존재에도 있다고 느꼈다.

바로 이 기관에서 "IT2000" 이라는 구호아래 싱가포르의 모든 정부기관의
정보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NCB의 직원들은 법원및 검찰 같은 사법기관에도 직접 파견돼 각 기관의
정보화 추진을 실질적,전문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이같은 싱가포르의 정보화 추진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도 사회 각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정보화가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검찰청에서도 종합정보통신망구축과 함께 형사사법
공용DB, 중요사범 영상정보 시스템, 검찰인터넷 서비스 제공등 다양한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법죄집단은 광역화하고 세계화하는데 원시적으로 이에 대응할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많은 정보화 사업이 내실보다는 외형적인 전시효과
또는 단기적인 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보화를 통한 사회비용의 절감은 커녕 국가예산만 고정적으로 축내는
애물단지 같은 프로젝트도 없다고 하기 어렵다.

정부 각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들어 놓은 PC통신 서비스나 인터넷
홈페이지 중에서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 몇개 되지 않는다는 점만
보아도 우리의 정보화 사업이 얼마나 전시효과에 치우치고 있는지 알수
있다.

정보화 추진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소프트웨어 산업도 아직 문제점이
많다.

검찰과 행정기관의 지속적인 불법복제 단속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정품사용의식은 더디게 바뀌고 있다.

불법복제를 막고 고부가 가치를 지닌 정보기술과 아이디어를 보호해
주는 것이 정보화시대를 이끌어가는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전세계 국가는 정보화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오늘날 사회는 너무나 복잡다기해서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처리와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공유 없이는 국가경영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따라서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21세기에도 계속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또 후발국가는 산업사회 아래서 뒤진 국력을 이 기회에 만회하기 위해
너도나도 정보화 부문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범세계적으로 진행중인 정보화 경쟁에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싱가포르의 경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장기적 안목과 진취적인 구상에
입각한 적극적 사업추진이 중요하다.

또 내실있는 사업선정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지난 30여년간 누적된 졸속계획과 부실시공으로 인해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비용의 손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우를 정보화 사업에서도 반복해서는 결코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싱가포르는 우리에게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배우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