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의 21세기는 정유5사의 "야심찬" 비전에도 불구하고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원료인 원유를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산업의 특성상 경쟁력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예정된 주변 환경의 변화는 정유5사에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당장 내년부터 유류가격과 수출입업이 자유화된다.

99년엔 정제업진입이 허용되고 석유시장이 전면 개방된다.

정유5사의 좋았던 "연합"은 깨지고 경우에 따라선 정유 8사, 10사 체제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셸 BP 엑슨 등 대형 메이저들이 몰려와 국내에 정유사나 주유소를 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유업계의 21세기는 그러니까 안방에서 무한경쟁을 맞는 형국인 셈이다.

전망이 밝진 않지만 정유사들은 나름대로 21세기 비전을 세우고 차근차근
그 목표에 접근해가고 있다.

5사 모두 뒤가 든든한 대그룹 계열사답게 과감한 투자와 앞을 내다보는
포석으로 2000년대를 준비하고 있다.

정유사들의 중.장기 비전은 대체로 <>석유화학부문을 동시에 육성하는
종합에너지 기업 <>수출을 통한 아시아 석유제품 공급업자 <>해외유전개발을
통한 원유자급률 확충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유사들이 석유화학을 강화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유부문에서 나는 손실을 유화부문에서 벌충하기 위해서다.

정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갖다 쓰는 유화부문을 동시에 육성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안정적인 사업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유공 LG정유 등은 지난해까지 TPA(테레프탈산)의 주원료인 PX
(파라자일렌)를 팔아 정유부문의 손실을 메우고 많은 이익을 남기기도 했다.

우수한 정제능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석유류제품 시장에서 메이저의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것도 정유업계가 꿈꾸는 21세기 청사진이다.

수출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는 1차적인 이유는 국내 공급과잉에 따른
활로모색이지만 장기적으로 정유를 수출산업화하겠다는 적극적인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업체들의 경쟁적인 증설로 올해 하루 201만8,000배럴인 국내 정유업계의
정제능력은 오는 2000년 243만8,000배럴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해외유전개발을 통한 원유자급률 확충도 정유사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다.

정유사들은 오는 2000년께 소요원유의 10~20%를 해외 유전에서 직접 조달
하기 위해 계열 종합상사를 통해 해외유전개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올해는 정유사들엔 시련의 한해였다.

환차손 석유화학불황 등으로 최악의 어려움을 겪으며 21세기가 결코
장밋빛일수 없음을 절감했다.

그동안 비교적 편안히 장사해 오던 영업직원들을 뛰어다니게 하고 관리직
사원들을 영업현장에 배치하는등 조직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체질개선의 필요성을 확실히 인식한 듯하다.

경쟁이라는 새 변수를 대입해 본 결과 비전 달성이 상당히 버거운 목표라는
걸 알았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