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안방을 박차고 나와 청문에게로 가서 작별 인사를 하였다.

이번 작별이 마지막 작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보옥의 마음은
무거워지지 않을수 없었다.

청문도 그런 예감이 드는지 보옥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그만 이불을 뒤집어
쓰며 돌아눕고 말았다.

보옥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대관원 뒤쪽 일각문으로 들어서
이홍원으로 향했다.

보옥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습인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보옥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는 거예요? 대관원을 샅샅이 뒤져도 안 보이던데"

"어, 그러니까 설반이네 집에 갔다 오는 거야"

보옥이 청문의 집에 다녀온 사실을 숨기고 얼버무렸다.

습인이 더 이상 캐어묻지 않고 보옥의 잠자리를 펼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어떻게 주무실 거예요?"

습인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어떻게 자긴. 아무렇게나 자지 뭐"

자조적인 보옥의 말투에는 청문이 없어진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청문이 있을 때는 청문이 보옥의 침상 곁에 잠자리를 펴서 자다가
보옥이 밤중에 일어나 심부름을 시키면 시중을 들곤 했던 것이었다.

습인은 보옥의 잠자리를 돌아보고 나서 잠시 망설이다가 청문 대신
보옥의 침상 곁에 자기 잠자리를 폈다.

습인이 잠자리에 들어 눈을 붙이려다 말고 보옥 쪽을 쳐다보니 보옥은
어느새 일어나 앉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곤 하였다.

한나절 동안 어디를 다녀왔길래 저리도 큰 근심거리를 안고 온 것일까.

습인은 자기가 집에 가 있는 동안 보옥이 시종명연과 함께 은밀히 자기를
찾아온 사실을 상기하고, 오늘 혹시 청문이 쫓겨가 있는 집으로 보옥이
갔다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얼마 지난후,보옥이 또 한번 한숨을 크게 쉬고 나서 그 한숨의 무게에
짓눌리듯 폭 꼬꾸라지더니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습인은 보옥이 잠이든 것을 보고 안심을 하며 자기도 두 눈을 붙였다.

그런데 한밤중쯤 되어 습인은 자기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눈을 떴다.

하지만 보옥은, "청문아, 청문아!" 하며 청문을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련님, 절 부르셨어요?"

습인은 머리를 매무시하며 부스스 일어나면서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