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한일경제연 연구위원>

높은 물가상승과 함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는등
침체국면이 지속되어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반면 OECD 가입 등
개방화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증폭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경기침체가 단순히 경기순환 국면상의 하강이 아니라 주로
양적으로 이루어왔던 고도성장의 한계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최근의 한국경제가 고비용 구조속에서 저생산성에 의한 저효율의 체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많은 논자들의 진단은 일치하고 있다.

더불어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경제적 측면에서의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자는 논의는 규제완화와 시장기능 강화,
기술혁신등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적 요인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제반 국가경쟁력 강화방안과
관련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시장적 요인이다.

사회적 도덕적 문화적 관습및 의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개 경제학자들은 비시장적 요인들을 일정하고 고정된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경제적 요인과의 상호작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비시장적 요인은 경제주체의 내면적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규정함으로써 시장요인 및 경제적 효율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바람직한 사회적 풍토조성이 요구되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같은 비시장적 요인중에서 공직자의 청렴도 및 건전한 영업윤리,
경쟁의 공정성, 사회구성원간의 신뢰조성 등은 국가의 경제적 효율성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지난 10월말께 아시안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대체로
부정부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가일수록 국민소득이 상위랭킹에 드는
선진국으로 나타났고,부정부패가 만연된 나라일수록 후진국이라는 상관
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 조사대상 54개국중 28번째로 부패한 나라로서 다수의 서구국가는
말할 나위도 없고 과거 사회주의권인 동구의 폴란드 체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보다도 더욱 부패한 나라로 밝혀졌다.

이러한 보도를 충실히 검증이나 하듯이 최근 각급 공무원들의 부정과
비리가 연이어 드러난 바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비리가 국민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밑으로는 서울시 공무원들로부터 위로는 국방 보건복지부 장관들의
수뢰사건까지 부패의 실상이 면면히 공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정부패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국민의 좌절감과 실망감을
불러일으키는"사회적 해악"으로서 인식되곤 하지만 더 나아가 부정부패는
"경제적 해악"이기도 하다.

부패구조의 심화는 국가자원의 비효율적 운용-낭비로 이어져 경제적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후진성을 가속화시키며 궁극적으로 대외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속성을 지닌다.

또한 곧 개최될 WTO 제1차 각료회의에서 부패방지가 새로운 협상의제중
하나로서 채택될 전망이듯이 국내의 부패관행은 향후 통상압력으로
이어져 국가경제적 손실을 야기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이와 같은 공직자의 부패고리의 이면에는 정상적인 이익추구
보다는 경쟁과 사회적 이익을 희생시키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어보자는 업자들의 탐욕적 영업윤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공직자의 부패구조와 업자들의 비윤리적 이익추구방식은 결국
정책의 일관성 투명성 공정성의 희생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처럼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할때 경제주체들이 정부정책을
불신하고 따라주지 않아 정책효과및 효율성이 반감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가 언급했듯이 공정성의 확보는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보장함으로써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를 활성화시켜 활발한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경제의 효율성및
경제적 성과를 높이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경쟁을 통한 공정한 풍토를 훼손시키는 사회적 제요소는
사회구성원간의 신뢰감상실을 통해 국가적 경쟁력을 위태롭게 한다.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신뢰 신용이 무형의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은
최근 번역 출판된 "트러스트"의 저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논지이다.

신뢰나 신용이 충만한 사회에서는 경쟁력이 강화되고 지속적인 경제적
번영이 가능하다.

강한 신뢰조성에 의하여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공유하는 사고-가치-기준이
일정한 것으로 전제되므로 경제주체들간 행위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지며,
이에따라 거래비용이 극적으로 감소하고 경제조직의 효율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반면 불신이 높은 사회에서는 조직적인 혁신이 어렵고 거래비용의 증가로
모든 경제활동에 일련의 세금이 부과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영자측과 노동계의 의견이 서로 맞서면서 최근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노동관계법 개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호간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노사관계이다.

과거 경영자측에서 정도경영, 투명한 경영으로서 애정어린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노조측에서도 대화를 통해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려고 시도했다면 쌍방의 신뢰는 강화될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호간의 신뢰가 일상적으로 존재했다면 국내 경제조직 활동의
효율적혁신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요인이 어렵지 않게 극복될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개발경제시대로부터 벗어나서 WTO 출범, OECD 가입 등
세계화의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하고 있는데 반해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어 내외적인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적 관점에서의 대응책이 절실히
요구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동시에 절실히 요망되는 것은 경제의 효율성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바람직한 비시장적 요인의 조성이다.

정책과 경영의 투명성 공정성 신뢰성의 확보 등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라도 추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당하고 비건전한 방법으로 업무 영업을 수행하거나
재산을 축적하려는 공직자 기업가 국민들의 의식과 행태가 사라져야만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노력이 단지 공직자나 경영인,개별 국민의 윤리나
도덕에 호소하여 해결될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가
될 것이다.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부정부패를 유발하는 불합리하고 다양한 정부규제를 완전히 철폐하여
시장기능을 강화함과 동시에 현재 시민운동 단체에 의해 입법청원된
"부정부패 방지법"등의 제정, 금융실명제의 철저한 강화조치 등 제도개혁이
병행되어야 성취될수 있는 목표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