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국민의 10명중 8명은 뇌물만 제공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정부패가 심한 곳으로는 정치권과 공무원을 지목했다.

부조리는 일상생활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자가운전자의 42.9%는 교통
경찰에게, 학부모의 36%는 교사에게, 일반시민의 12.6%는 행정공무원에게
촌지나 급행료를 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경제신문사와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최근 전국(제주도
제외)의 20세이상 성인남녀 852명을 대상으로 공동실시한 ''부정부패에 관한
전국민 의식조사'' 설문결과에서 나타난 것이다.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문민정부들어 진행된 부정부패 척결작업에 불만을
표시하고 선진국 진입을 위해선 이같은 부정부패가 우선 척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전반적인 평가 <>

부정부패가 "특정계층이나 일부 분야에 국한된 문제"(21.8%)라기 보다는
"사회전반적으로 만연된 문제"(78.2%)라고 지적했다.

부정부패가 공직자와 일반국민,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회 구석구석에
독버섯처럼 번져 있다는 인식이다.

국민들은 부정부패가 가장 심한 분야(복수응답)로 단연 "정치권"(78.9%)과
"공무원"(56.1%)을 지목했다.

경제계(21.7%)와 교육계(13.6%), 법조계(6.1%)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20대의 경우 응답자의 85.2%가 정치권의 부정부패가 가장 심하다고
지적했고 40대와 50대는 각각 62.6%와 64.7%가 공무원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또 대학재학이상의 고학력층(84.3%)과 자영사업자(80.5%), 학생(89.5%)
등에서도 정치권이 가장 부패한 조직이라고 응답했다.

우리나라의 청렴도에 대한 평가에서는 1백점 만점에 46.2점이라는 낙제
점수를 주었다.

연령별로는 30대(44.9점)와 40대(43.7점)가 비교적 낮은 점수로 평가,
사회에서 한창 활동하고 있는 세대들이 우리나라의 부패정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직업별로는 자영업자(42.4점)가, 소득별로는 월소득 3백1만원이상의
고소득층(43.7점)이 가장 낮은 점수를 줘 공무원과의 접촉빈도가 높은
계층에서 우리나라의 부패실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 대다수는 일상생활속에서도 부정부패를 수시로 목격하거나 연루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12.6%는 중앙부처나 구청에서 인허가등 민원업무와 관련해 이른바
급행료를 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자영업자(25.8%), 월소득 3백1만원이상의 고소득층(26.0%), 서울시민
(26.0%)등에서 비교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무공무원에게 촌지를 준 일이 있다"는 국민도 7.8%나 됐다.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때 "꺾기"를 강요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무려 43.0%에 달해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금융계의 고질적 악습인 꺾기
요구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자영업자(51.8%)나 서울시민(55.6%)의 경우 절반이상이 대출과 관련,
꺾기나 예금을 강요받았다고 응답했다.

학부모의 36.9%는 "교사에게 촌지를 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경험은 대도시일수록, 또 교육이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운전자의 43.0%는 "교통경찰에게 돈을 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운전자의 절반 가까운 수치로 교통관련 비리가 만연해 있음을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 공직사회 부패 <>

부정부패가 심한 계층이 "고위급"이라는 응답이 54.2%였다.

이에반해 "중간급"이나 "하위급"이라는 견해는 각각 10.4%와 6.1%에
그쳤다.

이에따라 향후 정부의 사정방향은 중하위급을 건드릴 것이 아니라 고위층의
부패여부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야할 것으로 분석됐다.

공무원 부정부패의 원인으로는 44.6%가 "잘못된 사회풍토"라고 지적,
부패에 둔감해 있는 우리사회의 "부패불감증"을 우선적으로 지목했다.

이외에도 "부정방지제도 미비와 처벌미약"(18.3%) "공무원의 청렴의지
결여"(15.8%) "최고통치권자의 의지미약"(8.0%)등을 꼽았다.

반면 "공무원의 낮은 급여수준" 때문이라는 지적은 6.8%에 불과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지속돼온 부정부패 처리에 대해서는 "만족"(7.5%)보다는
"불만"(33.1%)이라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응답자의 59.3%는 "그저 그렇다"라고 밝혀 국민대다수는 정부의 부정부패
처리에 대해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불만족을 많이 표시한 계층은 40대(37.7%)와 대학재학이상의 고학력층
(38.8%), 월소득 3백1만원이상의 고소득층(46.2%)등이었다.

부정부패와 관련된 정부정책에 불만족하는 이유로 국민들은 "부정부패에
대한 처리가 철저하지 못하고 용두사미격"(28.2%)인 점을 들었다.

또 "전반적으로 개선된게 별로 없다"(17.6%)거나 "정부의 사정의지가 없다"
(13.4%),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법이 강력하지 못하다"(12.6%)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국민 10명중 8명 이상은 우리사회에서 "뇌물은 안되는 일도 되게하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응답, 규정대로 일하기보다는 어느정도 편법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 85.4%는 관공서 일처리에서 "돈이면 안되는 일도 되는 경우가
있다"고 응답했으며 "곧이 곧대로 일처리를 하다가는 손해를 본다"는 의견
에도 84.2%가 동의했다.

국민들은 또 "뇌물은 공무원이 요구해서라기보다 민원인들이 혜택을 바라고
주는 경우가 더 많다"(74.9%)고 인식하고 있으며 "공무원의 급여인상등
처우개선이 되면 공직사회의 비리가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은 37.6%
에 그쳤다.

한편 뇌물을 요구하는 공무원의 비리를 보면 이를 "신고하겠다"는 의견은
56.6%인 반면 "묵인하겠다"는 의견도 43.4%에 달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시민의식 고양이 절실한 것으로 지적됐다.

<> 경제계 부패 <>

기업의 정치자금상납에 대해서는 자발적이기보다는 구조적 문제이거나
압력 때문이었다는 견해가 많았다.

특혜를 얻으려는 기업의 "자발적 헌납"(45.1%)이라는 견해가 가장 많기는
했다.

그러나 "각종 제도적 규제가 심해 구조적으로 뇌물을 상납할 수밖에 없다"
는 지적이 35.6%였고 정치권의 압력 때문이라는 응답도 19.4%였다.

특히 학생과 자유전문직의 경우는 각각 46.5%와 47.5%가 "기업의 자발적
헌납"이라기 보다는 "제도적 규제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보였다.

뇌물수수와 관련된 기업처리에 대해선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58.6%는 "작은 비리라도 엄단"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반해 국제적 신뢰도 실추를 염려해 "관대하게 처리"(11.3%)하거나
자발적 헌납에 대해서만 "선별처벌"(30.1%)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았다.

최근 대출커미션, 실명제 위반, 뇌물수수등과 관련한 은행장 비리에
대해서는 "일부 은행에 국한된 문제"(23.6%)라기 보다는 "전체 은행권에
걸친 광범위한 문제"(76.4%)라는 응답이 대다수였다.

금융권 비리 척결은 개인적인 처리보다는 제도적 접근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금융권 비리에 대해 "비리가 밝혀진 은행장을 엄단해 해결할 수 있다"
(11.4%)는 의견보다는 "은행 업무상 구조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므로 일부
은행장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88.6%)는 견해가 압도적
이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최근 부정부패에 대한 사정이 다시 거론되면서 증시가
하락하는등 경제가 냉각되는 조짐을 보이자 사정에 신축성을 요구하는
견해가 절반을 넘었다.

"경제가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부정부패 척결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46.3%로 가장 많기는 했다.

그러나 "경제가 희생되지 않는 범위내에서"라는 조건을 붙인 신중론도
41.9%나 됐다.

또 현재 경제상황이 어려운 점을 감안, "부정부패 척결보다는 경제활성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온건론도 11.8%였다.

< 정리=박영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