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보화사회를 맞이하면서 세계의 전자정보산업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전자대국 일본의 위력이 약화되고 창의성 넘치는 벤처기업이 약진하고 있는
미국이 권토중래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일본은 막강한 통산성의 주도로 산-학-연 공동으로 반도체
컴퓨터 등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또 편리하고 경박단소한 제품개발과 표준화된 규격의 대량 생산시스템을
이점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해왔다.

그러나 10여년전부터 태동한 디지털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종래의 아날로그
방식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하드웨어 위주의 대량생산체제는 이제 빛을 잃어
가고 있다.

모든 정보가 "0" 또는 "1"의 방식으로 저장-유통되는 디지털 혁명의 근간은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이를 활용하는 소프트웨어의 복합기술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이제는 지적인 창의력에 바탕을 둔 활력넘치는 벤처기업이 아니고
서는 대응해 나가기가 힘든 상황이 됐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산업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네트스케이프 등
창의력에 빛나는 새로운 별들이 쉴사이 없이 떠올라 디지털시대를 맞이한
미국 전자정보산업의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산업조직에는 이러한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

NEC 마쓰시타 등 주요 대기업들이 여전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창의력있는
신규진입자에게 길을 열어줄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개성보다는 공동체의식이 강한 집단주의문화, 암기식위주의 정형화된 교육,
표준과 규격화를 중시해온 기업풍토에서는 빌게이츠와 같은 창의적인 인재
배출이나 새로운 벤처기업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량생산의 대명사인 D램 반도체에 명운을 걸고 있는 한국의 전자산업도
일본 전자산업의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얼마전 OECD의 기술평가보고에서 지적한 것처럼 폐쇄적 금융시장, 단기이익
위주의 재벌경영, 중소기업여건의 구조적 취약, 경색된 관료주의 등 우리를
둘러싼 제도와 여건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21세기 지식 정보화시대를 열어가기
어려울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