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를 완공하는데 들어가야할 돈은 당초 계획보다 몇배가
될 것이며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통과구간 주변에 이미 밝혀진 상리터널및 조당터널부근 것 말고도
33개의 폐광및 자연동굴이 더 있는게 확인돼 노선변경과 공기연장등
사업전반에 걸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고속철도공단 발표는 엄청난
세금낭비의 책임소재를 분명히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단군이래 최대역사"라는 엄청난 공사를 이런 식으로 추진해온 무능과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심하고 울화가 치미는게 경부고속철도다.

이 사업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이미 20여년 전이고, 건설계획이
확정(89년5월 대통령재가)된 것도 7년이 넘었다.

바로 그런 사업이 공사도중 발견된 폐광 등으로 노선재조정을 해야할
형편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엄청난 사업비를 투입할 국책사업을 노선조사도 제대로 하지않고
주먹구구로 시작했다는게 말이 되는가.

거기다 경주를 거치느냐 마느냐, 대구 대전역을 지하로 하느냐 지상에
짓느냐는 등등의 문제로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니, 졸속한 계획으로
총체적부실은 이미 예고돼 있었던 셈이다.

올해말까지의 계획공정 24.1%에 크게 못미치는 9.7%의 진도율을
나타내고 있는 경부고속철도는 계획단계의 졸속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
설계변경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대전간 11개 공구에서 이미 38차례의 설계변경이 있었고 이로
인해 2,340억원의 추가부담이 발생했다고 공단측은 밝히고 있다.

대구 대전역 지하화는 설계변경에 겹쳐 지상의 철도시설물이전 등으로
엄청난 공사비 증액 요인이 됐다.

대전 지하역건설에 따라 파내야할 흙만도 15t트럭 54만대 분량으로
10분에 한대씩 처리할 경우 10년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다른 요인이
없더라도 공기지연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완공이 늦어짐에 따라 차량제작업체인 프랑스 알스톰에 거액의 위약금을
지불하는 것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위약금규모는 공기가 얼마나 늦어질지 철도공단과 알스톰측 교섭이
어떻게 귀결지어질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나, 돈도 돈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적으로 망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한심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어쨌든 당초 5조8,000억원, 93년6월에 10조7,000억원으로 잡았던
건설비가 얼마나 들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노선조사 등도 제대로 하지 않은 준비단계의 졸속, 노선과 역사 등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요구를 제때 조정하지 못한 무능과 직무태만 등이
겹쳐 엄청난 세금낭비가 빚어지게 된 셈이다.

부패에 못지 않게 이런 유형의 낭비도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전문성과 일관성을 갖고 사업을 추진해야할 공단 경영층의 잦은
개편이 또하나 낭비의 원인이 되지 않았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고속철도와 같은 낭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는 지금까지의
경위와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반성을 통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