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이 대부인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 자기
집으로 오면서 과연 희봉과 우이저가 자매처럼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다.

집사의 말과는 달리 희봉이 우이저를 구박하고 있다든지 우이저가
희봉을 투기하고 있다든지 하면 가련은 아내와 첩 사이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할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희봉과 우이저가 서로 다정하게 손까지 잡고
나와 가련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우이저가 지난번보다 약간 여윈 듯이 보이기는 했지만 희봉과의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희봉으로부터 우이저가 집으로 옮겨오게 된 자초지종을 듣고는 가련을
마음이 흐믓해져 아버지 가사가 자기에게 돈과 여자로 상을 내린 사실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글쎄, 내가 당신도 있고 우이저도 있고 해서 말이야, 자꾸만 사양을
했는데도 아버님께서 추동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니 아들 된 입장에서
거절만 할 수 없더라구"

그러면서 가련이 희봉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희봉은 가련이 능갈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는, 어유 개버릇
남주나 하는 심정이었지만 겉으로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내리신 선물이라면 당장 데리고 오지 않고 그랬어요?
추동이는 나도 잘 아는데 여간 참한 애가 아니지요.

추동이를 빨리 불러서 우리 세 여자가 힘을 합하여 서방님을 정성껏
모시고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나가야지요"

가련은 희봉이 언제 사람이 이렇게 변했나 싶어 의아해 하며 희봉을
새삼 바라보았다.

희봉은 가련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마음을 꼭 누르고, 우이저와
추동을 함께 제거하는 계책이 없나 재빨리 궁리하였다.

하지만 그 계책이 쉽게 떠오를 리 없었다.

우이저를 제거하기 위해 교묘하게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는 판에
추동까지 남편의 첩으로 들어왔으니 희봉으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가련은 희봉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곧 추동을 데리고 왔다.

희봉은 추동을 짐짓 반기는 척하며 추동을 대부인과 왕부인 앞으로
인도하여 인사를 시켰다.

그리고 우이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바깥채 한 채를 내어주어 추동으로
하여금 기거하게 하였다.

가련은 추동과 일종의 신혼기간을 보내는 셈이어서 희봉과 우이저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뒤로 미루고 거의 밤마다 추동의 거처로 가서
잠자리를 함께 하였다.

열일곱 살 난 처녀인 추동의 몸은 팽팽하기 이를 데 없어 가련은
추동의 몸속으로 들어갈 적마다 청춘이 새로 돌아오는 것 같은 신선한
황홀감에 젖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