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은 우씨에게 돈을 뜯어낼 때 말한 것처럼 장화가 돈 백 냥을
받아먹고 파혼장과 영수증을 써주기는 하였지만, 또 파혼이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고소를 하겠다느니 협박하며 돈을 더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이번 기회에 장화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희봉이 왕아를 불러 그런 뜻을 슬쩍 내비치며 알아서 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왕아는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희봉의 지시대로 따랐다가는
어떤 화를 자초할지 몰랐다.

장화가 요즈음 장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말 고향으로 내려갔을
수도 있는데,그런 사람을 굳이 찾아가서 없앨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왕아는 희봉에게 장화를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고
보고함으로써 그 일을 마무리지었다.

희봉도 얼마 지나자 더 이상 장화의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두 달 가량이 지난 후에 희봉의 남편 가련이 출장에서 돌아왔다.

가련은 아내인 희봉에게로 가기 전에 먼저 우이저가 기거하는 집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 집은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대문을 비롯한 모든 문들은 잠겨있고 대문 앞에는 늙은 집사 하나가
꾸벅꾸벅 졸며 앉아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갔는가?"

가련이 불길한 예감이 온몸으로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집사에게 물었다.

"큰마님께서 작은마님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자매처럼 오순도순 사시자면서 동채를 수리하여 작은마님이 들어와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감님은 정말 좋은 마님을 얻으셨습니다"

희봉의 성격을 잘 아는 가련으로서는 집사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어 초조한 마음으로 말을 몰아 영국부로 와서 우선 아버지 가사에게
문안인사 겸 출장 보고를 드렸다.

이번 출장은 사실 아버지 가사의 심부름 성격을 띤 것이었다.

평안주 절도사를 만나 인사청탁을 하는 것이었는데, 마침 절도사가
외지로 순찰을 나가는 바람에 가련은 절도사가 돌아올 때까지 달포나
기다리느라 예정보다 늦게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일이 잘 처리되었다는 말을 들은 가사는 크게 기뻐하며 가련에게
상으로 돈 백 냥을 내리고, 자기가 데리고 있던 추동이라는 예쁜 시녀를
가련의 첩으로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련은 그 동안 아버지 가사 대감댁에 들를 적마다
추동에게 눈독을 들였는데, 가사는 가련의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바로
그 애를 선물한 것이었다.

우이저도 첩으로 얻어놓은 지금 추동까지 얻었으니 가련은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