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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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직후 일본의 특파대사로 한국에 온 사이온지 킴모치가
흥선대원군을 만나 한국에 철도를 부설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때 대원군은 안색이 변해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철도를 놓으려면 반드시 산을 뚫고 계곡을 메워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암석을 깨뜨리게 될 터이다.
암석은 국가의 척수인즉 이를 깨뜨리고서도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암석국수론"이 근화화정책을 줄곧 외면했던 대원군의 생각의 일면을
엿볼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다.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책임을 대원군 한 사람에게 덮어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오랫동안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그가 책임을 면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고종초 10년동안의 집정은 강직한 성격과 과감한 개혁정치로
내치에 큰 실력을 올렸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적 접근에서 민족을
지킬수 있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
외척세력인 동 김씨 일족을 정권에서 축출하고 노소남북 4색의
인물들을 고루 등용한 것이라든지,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철폐한 것 등은 어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개혁으로서 "대원위대감"의 성가를 높여준 업적들이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것이 늘 그렇지만 대원군은 이처럼
한국 근대사에서 부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대원군의 사저이고 고종의 생가이기도 한 운현궁이 4년동안의 보수공사를
끝내고 오는 26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개관행사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예식 (결혼식) 장면이 재현되고
사랑채와 안방에는 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의 유품이 전시된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명절에 5회쯤 가례식을 재현할 계획이라니 덕수궁
수문장교대식에 이어 서울도심에 이벤트관광명소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됐다.
운현궁은 고종이 12세때 즉위한 뒤 대폭 확장 신축하고 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본래는 2만여평에 아재당을 비롯 사랑채인 노안당, 안채인 이노당
노악당 영화루, 대원군의 선조인 사신군과 남연군을 모신 사당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팔려 나가고 대지 2,000여평위에 노안당 이로당만
남은 것을 서울시가 지난93년 사들여 보수했다.
운현궁은 다시 봄을 맞았지만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던 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의 사랑채인 석파랑 (지방유형문화재 제23호)은 엉뚱하게
홍지등으로 옮겨져 지금은 요정울안의 장식품 노릇을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요정의 이름도 "석파랑"이고 간판에는 대원군의 얼굴까지 버젓이
그려놓아 인근 주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시에서 사들여 다른곳으로 옮기든지, 그럴 생각도 없으면 "문화재"
에서 풀어 버리는 것이 올바른 문화재행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4일자).
흥선대원군을 만나 한국에 철도를 부설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때 대원군은 안색이 변해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철도를 놓으려면 반드시 산을 뚫고 계곡을 메워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암석을 깨뜨리게 될 터이다.
암석은 국가의 척수인즉 이를 깨뜨리고서도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암석국수론"이 근화화정책을 줄곧 외면했던 대원군의 생각의 일면을
엿볼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다.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책임을 대원군 한 사람에게 덮어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오랫동안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그가 책임을 면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고종초 10년동안의 집정은 강직한 성격과 과감한 개혁정치로
내치에 큰 실력을 올렸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적 접근에서 민족을
지킬수 있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
외척세력인 동 김씨 일족을 정권에서 축출하고 노소남북 4색의
인물들을 고루 등용한 것이라든지,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철폐한 것 등은 어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개혁으로서 "대원위대감"의 성가를 높여준 업적들이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것이 늘 그렇지만 대원군은 이처럼
한국 근대사에서 부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대원군의 사저이고 고종의 생가이기도 한 운현궁이 4년동안의 보수공사를
끝내고 오는 26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개관행사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예식 (결혼식) 장면이 재현되고
사랑채와 안방에는 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의 유품이 전시된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명절에 5회쯤 가례식을 재현할 계획이라니 덕수궁
수문장교대식에 이어 서울도심에 이벤트관광명소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됐다.
운현궁은 고종이 12세때 즉위한 뒤 대폭 확장 신축하고 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본래는 2만여평에 아재당을 비롯 사랑채인 노안당, 안채인 이노당
노악당 영화루, 대원군의 선조인 사신군과 남연군을 모신 사당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팔려 나가고 대지 2,000여평위에 노안당 이로당만
남은 것을 서울시가 지난93년 사들여 보수했다.
운현궁은 다시 봄을 맞았지만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던 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의 사랑채인 석파랑 (지방유형문화재 제23호)은 엉뚱하게
홍지등으로 옮겨져 지금은 요정울안의 장식품 노릇을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요정의 이름도 "석파랑"이고 간판에는 대원군의 얼굴까지 버젓이
그려놓아 인근 주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시에서 사들여 다른곳으로 옮기든지, 그럴 생각도 없으면 "문화재"
에서 풀어 버리는 것이 올바른 문화재행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