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은 오늘 하루 임원회의실을 비워주세요"

주택은행 임원들은 3달에 한번씩 임원회의실을 신세대 뱅커들에게
내주어야 한다.

입사한지 2년이 채 안되는 행원들이 회의실을 점령한다.

이 모임이 바로 "프레시보드(Fresh Board)".

우리말로는 "신세대 위원회"다.

신세대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 조직된 행원들만의
임원모임이라 할수 있다.

이 자리에서 쏟아지는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천태만상.

황당무계한 얘기도 있지만 기성세대는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들을 내놓기도
한다.

"금융자율화시대에 걸맞게 여직원들도 근무복을 자유화하자"

"행원도 임원들에게 바로 보고할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자"

"주거래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상품을 마련하자" 등등.

여기에서 주장되는 내용은 부장이나 이사의 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은행장에게 전달된다.

때로는 은행장이 직접 모임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은행장도 위원중 한명에 불과하다.

프레시보드의 최대 히트작은 주택은행이 최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파워뱅크".

올봄 민영화를 계기로 행내에서 애칭을 공모했다.

프레시보드 임원들은 "힘있는 은행을 나타낼수 있는 별명을 찾아보자"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파워뱅크.

이 아이디어는 은행장에 의해 전격 채택됐다.

프레시보드가 제시하는 각 아이디어들이 이처럼 모두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말잔치로 끝낼때도 많다는게 멤버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 모임의 멤버인 광교지점 안수영씨는 "프레시보드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말단행원이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의견을 제시할수 있다는 것"이라며 "의견이
채택되든 채택되지 않든간에 의사소통의 장으로 가꾸기 위해 적극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계지점의 송선희씨는 "프레시보드가 열리기 전 열흘동안은 공부도 많이
하고 주위동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모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토개발연구원지점의 박진억씨는 "세달에 한번꼴로 모임을 갖기 때문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사장되기도 한다"며 "그러나 은행경영에 대해 지적
하기도 하고 개선이나 혁신을 요구할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은행의 발전은
보장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 멤버는 "소설 "상자속의 생"에는 은행의 청년중역회의가
은행장의 친위부대로 전락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활력을 주기 위해
프레시보드 구성원들을 자주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 박준동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