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라면 으레 접대를 떠올리게 되고, 2차 3차가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5,6년전까지만해도 영업의 도사는 접대자리에서 먼저 넘어지지 않고
상대를 택시에 태워 집에 보내거나 여관방에 눕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그런 자리를 기화로 인간적인 친밀도를 높여 여러가지 정보를 빼내거나
거래에서 우선권이나 편의를 제공받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언론에서는 프로필에 "매일 출격" "두주불사" "1년내내 새벽귀가"라고
쓰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경제의 조정기적 불황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품질경쟁상황에
이르자 당황해하는 기업들이 의외로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잘 알고 지내던" 구매부서가 갑자기 축소되거나 담당자 책임자가
교체되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아예 공개경쟁으로 거래업체를 선정하는등
"열린업무"를 하다보니 이전에 뿌려 놓았던 약발(?)이 잘 듣지 않아 고전
하게 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경제가 개발단계에서는 부족한 자원을 한데 모아 전략적이고 공격적
투자를 할 수 밖에는 없었고, 그 때문에 국내시장은 자연스럽게 독과점구조
가 정착되면서 전반적으로 인맥에 의존하는 영업과 거래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적인 영업목표가 되는 것이 당연
하였으니 정작 국제경쟁의 시대에 필요한 기술개발이나 품질개선 노력은
뒷전이고 불필요하고 낭비적 인맥유지가 우선시되다보니 기업경쟁력이
뒤지게 된 요인이 되어 왔다.

물론 이런 접대문화만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경쟁과 자기변신의 몸부림없이 고도성장의 단물만 따라다닌 기업엔
요즘의 상황이야말로 벼랑끝 상황이기 십상이다.

잘 나가던 시절의 골프모임에선 내기 시합에 열중하더니 이젠 어떻게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제조업을 걷어치우고, 보다 손쉬운 사업으로의 전환법이
라운드동안의 주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골프장 유머만은 아닐 것이다.

기업들의 접대비가 과소비의 주범으로 몰려 세무조사를 받게 하겠다는
엄포를 정부에서 할 정도로 그동안 기업들의 접대는 기업의 성장속도보다
빠르게 발전 아닌 발전을 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급일식집에선 1인분에 7만~8만원짜리 회접시가 싸다고 잘 팔리지만
정작 개인돈으로 그런 회를 즐길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
이다.

일본에서도 경제와 사회의 거품을 걷어내는 첫번째 모습이 "접대문화"의
변화였다고 한다.

한동안 불황에서 침몰할 것 같았던 일본 경제는 이제 튼튼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더 이상의 어려움으로 빠지기 전에 인맥이나 접대를 통한
사업의 유지에 신경을 쓰기보다 생산성증대와 신기술개발을 통한 적극적인
경영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시기라고 본다.

한왕근 < 서울 도봉구 창2동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