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성 < 숭실대 교수/경제학 >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방법론에 있어 범하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가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이다.

이는 미시적으로 타당한 경제행위라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거시적으로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개념이다.

기업에 확산되고 있는 "명예퇴직제"도 이러한 "구성의 오류"의 한 예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명예퇴직이란
형식으로 인원감축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감량경영은 미시적으로는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여 경쟁력을 높일수
있으므로 바람직하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실업을 증가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고용감축은 개인들의 가처분소득에 영향을 미쳐 소비감소로
연결돼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수도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이같은 관점에서 "고비용 저효율"의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처방의
하나로 확산되고 있는 명예퇴직이 과연 최선책인지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감량경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더 큰 이유는 명예퇴직이란 형식으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대체로 40~50대 초반의 남성 가장들
이라는데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40~50대 초반 남성 실업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40대와 50대 초반의 남성 가장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취감을 느끼며 한창 일할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자녀들은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다니거나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로서
자녀들에 대한 교육비 지출이 엄청난 때에 해당된다.

이러한 시기에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성상 이들이 재취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경기상황에서 창업을 한다는 것도 엄청난 위험부담이
따른다.

이래서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을 떠나야 하는 40~50대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기업의 채산성이 떨어지고 경제가 어려울 때 선진국의 많은 기업들이
감량경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예도 있다.

미국의 전화 전신회사인 AT&T, 자동차회사인 GM사, 일본의 전기통신 회사인
NTT사 등이 감량경영을 통해 불황을 극복한 대표적 기업들이다.

그러나 최근 감량경영으로 오히려 경영에 실패했거나, 인원감축없이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회사들도 있다.

때문에 감량경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감량경영을 통해 실패한 대표적 기업은 미국의 항공회사인 델타항공이다.

델타항공은 경제가 어려웠던 지난 80년대 말 전체 인력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만2,000여명을 감원했다.

이러한 감원열풍은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켰고, 사기저하는 그동안
델타항공이 자랑하던 정확한 이륙시간, 질높은 서비스 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기업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와는 정반대 성격이 되는 또 다른 예로 유럽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독일의 폴크스바겐사를 들수가 있다.

이 회사는 감원태풍이 한창이던 93년 노조측과의 근로시간 단축및
임금협상을 통해 감량경영을 실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사합의에 따라 폴크스바겐사는 94년부터 세계 최초로 주4일
근무제를 도입했고 임금도 10%를 삭감했다.

아직도 약 3만여명의 잉여인력을 갖고 있는 폴크스바겐사이지만 명예퇴직
같은 제도의 도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정년이 가까운 노동자들에게 주 20시간 파트타임 근무제를 허용해
인원감축 없이 효율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폴크스바겐사는 생산성이 향상되고 수주량도 증가해 불황을
모르는 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이 어려울때 감량경영은 가장 쉽게 생각할수 있는 처방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은 실업이라는 "시장의 실패"를 낳고, 이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해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한다.

감량경영이 아닌 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전략이 필요하다.

그 전략으로 기존인력의 재배치, 근로시간및 임금의 신축적 운영, 기술혁신
등을 생각해 볼수 있다.

물론 기업에 따라서는 지난 수년간 누적돼온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를
수술하기 위해 감량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어느 한 경제주체에만 책임을
전가시키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책은 성공할 가능성도 낮다.

오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 3주체가 고통을 분담하는
이해와 지혜가 필요하다.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직장을 떠나는 40대와 50대는 지난날 한국 경제성장
의 신화를 창조한 주인공들이며 오늘의 기업이 있게 한 주역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감상적 표현으로 경제문제를 온정주의에 입각해 풀어보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경제문제는 경제학자 마셜이 말한 것 처럼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으로 풀어 가야 한다.

기업에 있어 경쟁력 약화의 문제도 "냉철한 머리"로 합리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IBM 필립스 도요타 등의 세계적 기업들은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
소프트한 분야로의 사업구조 전환, 전략적 제휴를 통한 리스크 최소화
등을 전략으로 내세워 불황을 극복했다.

더욱이 이들 기업들은 불황을 극복하는데 있어 "명예퇴직"이라는 "구성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