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경제력 집중억제시책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경미한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형벌규정을 폐지하고
기업결합 신고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일부 규제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규제완화는 대체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개정안에 가장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경제력 집중억제 시책의
강화는 재계는 물론 각계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경제력집중은 그 자체가 경쟁저해 요소이므로
당연히 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경제력집중은 어느 나라에서나 자유경쟁의 결과로서 적자생존의
시장원리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그 자체로서 반드시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반 여론은 일부 재벌이 우리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고 우려하고 있으나 네덜란드의 필립스나 핀란드의 노키아와 같은
대기업이 그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비교해 본다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력집중이 경쟁제한요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반적으로 경제력집중이 경쟁제한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많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무차별적으로 경제력집중 그 자체를 경쟁제한행위로 보고 이를
직접 억제하는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시장경쟁에서 성공한 결과 성장하는
경쟁력있는 기업의 성장을 억제함으로써 국가경제전체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왜곡하는 폐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개정안의 경제력집중 억제조항의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30대 재벌에 대한 채무보증한도의 축소와 해소는 우선 경제적으로
상당히 무리한 요구사항으로 보인다.

또한 이를 시행한다 하더라도 그 제도의 취지를 살려 선별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100%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의 채무보증이나 보증회사의
주주 전부가 승인하는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은 이를 금지해야
할 아무런 법적-경제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이와 달리 일부 대주주가 보증회사와 피보증회사를 사실상 함께
지배하는 것을 이용하여 보증회사 소수주주의 이익을 무시하고 계열사에
대하여 채무보증을 하는 경우는 문제이나 이 경우도 원칙적으로
회사법이나 증권거래법으로 해결할 문제이므로 경쟁제한효과가 있는
범위 내에서만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지주회사 설립금지규정이나 출자총액제한규정도 마땅히 폐지되어야
할 규정들이다.

일본 외에는 어느 나라에도 지주회사 설립을 금지하는 입법례는
없으며 일본도 이를 곧 폐지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주회사의 경쟁제한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서 이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규정이며 현실적으로 재벌들의
"회장실"과 같은 비정상적 조직을 조장하는 비효율성 외에는 아무런
효과를 찾을 수 없다.

특히 출자총액제한은 시장환경의 변화에 따른 기업의 신속한 조직변경
(restructuring)이 요청되는 오늘날의 여건에는 맞지 않는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정안에서 새로 도입한 이행강제금제도나 긴급중지명령제도는 먼저
그 필요성이 의문시될 뿐 아니라 그 절차에는 더 큰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는 있으나 그 법적 환경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우선 미국에서는 독점금지당국이 직접 시정명령을 내릴 수 없고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만 시정명령이 가능하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은 법원의
판결없이 즉시 그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므로 긴급중지명령의 필요성은
의심스럽다.

또한 현행법상의 과징금제도와 형벌규정에 비추어 볼때 이행강제금의
필요성도 의문시된다.

끝으로 개정안에는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개래법은 시장경쟁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규범이므로 경쟁의
병리적 현상인 법위반여부의 판단도 경제논리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부당공동행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시장의 확정과
경쟁제한효과의 계량화와 같은 경제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수사나 공소유지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이 공동으로 수행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현행규정을 일단 유지하면서 두 기관간의 실무적 공조기구를
설치하여 합리적 운용을 기하든가 조세범처벌법과 같이 일정한 기준을
넘는 중대한 위법행위(예를 들면 시정명령과 함께 일정액이나 매출액의
일정 비율 이상의 과징금이 부과된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하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이
좋을 것이다.

전속고발권 문제는 관계당국들이 각 기관의 입장을 떠나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동으로 연구.검토한 다음 공청회 등의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