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초 중견 무역회사인 S사의 영업부 사무실.

젊은 사원 서넛이 커피자판기앞 의자에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다.

"정치인 자제 결혼식에 비행기가 떴대.

수백만원짜리 루이13세 양주를 사온 국회의원도 있다던데"

"정치인이니까 가능한 얘기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양주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어"

"짜증나는 얘기 그만두고 일이나 하러 갑시다"

이 대화는 우리 정치에 대한 신세대 직장인들의 의식을 보여준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그들에게 정치는 "남의 일"일 뿐이다.

무관심의 선을 넘어 정치 냉소주의에 빠져들고 있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건설회사인 H사의 인사과와 총무과에 근무하는 서른살 안팎의 사원 7명에게
"우리나라 국회의원수가 몇 명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중 299명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한 사원은 고작 2명.

가장 상식적인 것조차 모르느냐는 핀잔에 그들은 서슴지 않고 "그것 알면
떡을 주나요, 밥을 주나요"라고 되받아친다.

이 회사 해외영업직 사원인 Y씨(30)는 대학다닐때 소위 운동권에 몸담기도
했다.

그때는 정치상황에 매우 민감했단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술좌석에서 정치얘기는 안해요.

의식적으로 피하는 편이지요.

캠퍼스에서 함께 정의를 외쳤던 친구들 대부분이 같은 생각이에요.

꿈이 좌절됐다고나 할까요"

신세대의 정치 냉소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는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PC통신
에서도 잘 나타난다.

PC통신 천리안에는 정치인들을 모델로 꾸며진 우스갯소리가 무궁무진하다.

그중 한 토막.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한 한 후보가 당총재에게 "돈 때문에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이를 듣던 총재가 "바이 더 피플에 실패한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후보는 "By the people 이요"라고 물었다.

총재는 "아니 Buy the people"이라고 답했다"

신세대들의 전반적인 "정치외면"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관심이 많다.

대권 얘기만 나오면 귀를 기울인다.

"여권내 누가 차기대권 주자로 낙점되느냐"

"김대중 김종필 두 김씨는 다음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하느냐"는 등은
술좌석의 좋은 안주거리가 되곤한다.

정치에 무관심한 신세대 직장인들은 그러나 우리 정치상황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주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는 우리 정치가 정치적 무관심을 낳고 있다"
는데 공감한다.

모대기업 홍보과의 L씨(30)는 "국회는 "몸싸움의 장", 국회의원은 "표에만
관심있는 사람" 등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됐는데 누가 그들을 좋아하겠느냐"며
"정치인의 도덕성을 검증 감시하는 장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총무처 사무관인 J씨(31)는 "우리 역시 정치 수요자이다.

공급자라면 수요자에게 다가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은 그걸 모르는것 같다"라고 정치관을 피력한다.

일부 정치인들이 컴퓨터통신망에 가설한 사이버 파티(Cyber Party)는
컴퓨터세대 공략의 효과적인 방법이라는게 그의 제언이다.

신세대 직장인들은 이렇듯 겉으로는 정치적 무관심 현상을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나름대로의 뚜렷한 자기주장을 갖고 있다.

< 한우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