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 경희대 교수 / 경영학 >

증권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가 800선 턱앞에서 맥을 못 쓰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보니 증권시장에 대한 어떤 대책을 세우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동안 증권당국이 증권시장에 대해 펼쳐온 대책은 주식의 공급과 수요에
맞춰져왔다.

과거에 정부는 주가가 너무 오른다 싶으면 공기업의 민영화라던가 기업
공개나 유상증자를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통해 타오르는 주식시장의 열기를
식혀 온 것이 사실이다.

주가가 너무 빠진다 싶으면 정부 통제하에 있는 투신사 등에 한국은행의
특별융자까지 줘 주식을 매입토록 했다.

게다가 증권회사들의 출자로 증권시장 안정기금이라는 편리한 기관을
만들어 인위적인 수요를 창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위적 시장운용은 거의가 다 우리 증권시장의 기능을 왜곡시키는
데 일조를 했으며 그 결과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의 증권시장에 대한 이해를
그르쳐 왔다고 생각한다.

어려서 버릇이 잘못 든 아이들처럼 증권시장의 상황이 어렵기만 하면
여지없이 경제계나 투자자들은 증권당국에 대해 대책을 내놓으라고 몰아
부친다.

최근 증권시장의 침체양상이 지속되면서 몇가지 증시대책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중 증권당국이 인위적으로 공급물량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은 매우 일리가 있다.

투자자의 투자의욕을 높이기 위해 배당을 액면배당제도(배당률)에서 시가
배당제도(배당수익률)로 바꾸는 방안과 유상증자때 발행가격의 할인폭을
높여 투자자의 투자의욕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같은 방안들은 물론 단기적인 차원에서 증시에 활력을 넣어주면서 주가
상승을 견인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증권시장 장세전환의 계기로 활용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처럼 주식시장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지 않은, 인위적인
주식수요 확대 대책은 주가의 전반적인 상승세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수요증대는 우리기업의 경쟁력이 차차 강건해지고 그에따라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전망도 점차 밝아짐으로 해서 자연스레 유발돼야지
인위적인 정부의 조치에서 파생된 수요는 정상적인 자본시장의 기능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단기적인 수요 확대대책이 가져올 수 있는 정과 부의 효과를 따져보면
더욱 그렇다.

우선 배당수익률로의 제도변경은 어떤 시점에서나 배당률을 알면 배당
수익률도 저절로 알게 돼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어떠한 추가적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이 제안의 목적은 배당수익률로 공시하게 함으로써 기업들에게 보다 많은
배당금 지급의 압력을 넣자는 것이다.

즉 현재 배당공시는 액면 대비인 배당률로 하고 있으므로 어떤 주식의
시가가 2만5,000원이고 배당금이 500원이라면 그 주식의 배당률은 액면가
5,000원대비 10%로 표시되지만 시가대비 배당수익률은 2%로 표시될 것이므로
기업들이 부담감을 느껴 배당을 더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넘어진 아이는 무릎에 묻은 새빨간 꽃잎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기업들도 그러리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배당을 적게하는 이유는 고성장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유보금에 대한 투자수익율이 주주의 기대수익율보다 높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숫자의 마술앞에서 기업들이 배당정책을 바꿀 필요를
느끼겠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더욱이 불황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 경기 상황을 감안할
때도 가능성에 의문이 생겨난다.

즉 임금동결은 물론이요, 높은 배당금을 주던 기업들도 배당을 줄이려는
판에 고금리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주주에 대한 현금 배당을 증가시켜야
한다면 부족한 투자재원을 과연 어디서 조달하겠느냐는 난관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상증자 발행가격 할인폭 확대책도 증권시장을 부양하는데 크게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다.

기업은 원래 기존 주주들의 것이다.

따라서 유상증자때 신주인수권을 활용해 새로 발행되는 주식을 인수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소유권이 분할된다는 점에서 손해가 되며 그래서 할인
발행되는 신주를 모두 인수한다고 해도 구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할인폭이 클수록 구주주들이 모두 신주 인수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대신 구주주들은 신주 구입 자금을 마련하느라 공연한 피곤만을 감수해야
할 뿐이다.

차라리 할인 발행보다는 시가대로 발행하는 것이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조치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초 공모시의 할인 발행은 투자자들의 수요를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할인을 강요하게 되면 기업의 창업주들이 공개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공개를 기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만약 신주의 할인발행을 촉구할 경우 그 방안은 바로 신주발행을
억제하라는 소리와 다름없는 얘기가 된다.

증시가 너무 휘청거릴때 버팀목이나 바람막이를 세워줄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더 바람직하기로는 스스로 자생력을 갖춰 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게다가 금융시장 개방화 등 증시를 둘러싼 환경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
어렵게 하는 시점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증권시장에 대해 어떠한 섣부른 대책을 세우기 보다는 우리의
기업 경영환경이 좋아져서 증권시장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증권시장에 관한 가장 올바른 대책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나라의 경제도 결코 완전히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법은
없으며 그에 맞춰 언젠가는 우리의 증시도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오를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날개를 달아주는 방안보다 날개가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게
훨씬 현명한 증시대책이다.

그래야 증시가 비상하는 힘과 거리도 커질 것이다.

지금 투자자들에게는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기다리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일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