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표본으로 평가받고 있는 독일중앙은행 분데스방크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독일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데스방크의
오만한 정책탓이라는 비난의 소리가 높다.

행정부로부터 너무 독립되어 있는 나머지 독불장군식으로 통화정책을
운용, 경기부진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독일경제는 지난해 4.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후 아직까지
이렇다할 경기회복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행정부의 성장론에 귀를 안기울이고 물가안정에만 치중하다가
경제를 이지경으로 만들었다고 꼬집는다.

행정부에서 독립돼 있는 분데스방크는 독자적인 긴축통화정책으로 물가를
잡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대가는 비쌌다.

성장둔화와 높은 실업률을 몰고 온 것이다.

현재 독일 인플레율은 1.7%안팎으로 물가는 매우 안정돼 있다.

하지만 성장률은 마이너스와 플러스의 경계선에 낮게 엎드려 있고
실업률은 10%를 넘는다.

이는 성장보다는 안정을 추구해온 분데스방크의 통화공급및 금리인하억제
등 긴축금융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한 독립성을 누리고 있는 분데스방크는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실업사태도
해소하기 위해선 금융완화가 필요하다는 행정부측의 요구를 무시한채
물가안정책만 펼치고 있다.

이렇게되자 행정부는 분데스방크의 고유권한인 금리와 통화조절에 의한
경기부양책은 포기하고 행정부가 할수 있는 재정정책으로만 경기회복을
도모중이다.

하지만 재정정책만으로는 경기부양효과가 미미해 독일경제가 불황의
긴 터널안에 주저앉아 있다고 HSBC은행의 이안 셰퍼드슨 연구원은
지적한다.

이와는 달리 유럽중앙은행들중 독립성이 가장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영국은행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선은 매우 곱다.

영국경제가 물가안정속에서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영국은행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펴는 대신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 올바른 금융정책을 펴고 있는 덕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영국경제의 성적은 서유럽에서 매우 돋보인다.

성장률은 3%에 이르고 인플레도 2.7%로 물가마저 안정돼 있다.

게다가 실업률은 7.5%로 7년만의 최저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등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된 유럽대륙국가들이
두자릿수의 높은 실업률로 허덕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모두 영국은행이 재무부의 뜻을 따라 경기진작책을 펼치고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에따라 일각에서는 금리와 통화공급면에서 정책결정권이 없는
영국은행이야말로 "국가경제 전체를 위한 중앙은행"이라는 찬사까지
나오고있다.

영국은행은 금리와 통화량문제와 관련해 재무부에 정책안을 제시할수
있으나 결정권은 없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된 독일에서는 경기가 침체하고 중앙은행
독립성이 약한 영국에서는 경기가 양호하자 중앙은행의 독립이 전부는
아니라는 여론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히 오는 99년 유럽에 단일통화가 도입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유럽중앙은행이 들어서면 유럽대륙은 분데스방크의 어두운
유산을 이어받게 될것으로 우려한다.

유럽중앙은행이 각국 행정부의 성장정책을 무시하고 물가안정에만
역점을 두다가 자칫 경제를 침체시키고 실업자만 양산할수도 있다는
가능성에서다.

독일과 영국의 경제상황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경제안정은 대체로
비례한다"는 일반론에 의문부호를 그리고 있다.

< 이정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