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어요. 하지만 혼사와 같은 대사는 두 집안에서 좀더 신중하게
생각을 한 연후에 결정을 하는 것이 좋겠지요"

설부인은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보옥을 보채가 일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일지 의문스럽기도 하였다.

"보옥을 일단 살려놓기 위해 치르는 혼사이니 이것저것 번거로운 절차도
생략하고 하루라도 앞당겨 치르는 것이 좋겠어.

그래야 보옥을 염려하는 집안 어른들의 시름이 빨리 덜어질 테니까.

설반한테는 설과나 다른 사람을 보내어 보채의 혼인 소식을 전해주면
되겠고"

왕부인이 간곡한 어조로 말하자 설부인은 더이상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 원앙이 왕부인의 방으로 와 대부인이 일이 어떻게 되었는가 몹시
궁금해 한다고 전하였다.

설부인이 잠시 머리를 들어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고 나서 길게 한숨을
쉬며 대답하였다.

"대부인 마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하여라"

말하자면 혼사에 대해 허락을 한다고 확답을 한 셈이었다.

왕부인과 희봉이 빙긋이 미소를 떠올렸다.

설부인이 집으로 돌아와 보채를 불러 그 동안 혼사에 대해 집안 어른들과
오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 보옥 도련님과의 혼사를 어머님께서 허락을 하신 건가요?"

보채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먼저 네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을 해야 하는건데 워낙 집안 어른들이
서두르시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중매는 가련과 희봉 부부가 맡는 것으로 했다"

보채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설부인은 보채가 원치 않는 혼인을 하게 되어 눈물을 흘리나 싶었으나
보채의 속마음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혼인을 하게 된 지금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는 세상에 계시지 않고,
오빠 설반은 옥에 갇혀 있고,올케 언니였던 하금계는 향릉을 독살하려다가
오히려 자기가 독을 마시고 죽고,신랑이 될 보옥은 아직 성한 상태가
아니고......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여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옥이 대옥을 보채 자기보다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남아 있는 가운데 혼인을 하려고 하니 마음이 더욱 착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설부인은 설과를 불러 설반에게 가서 보채의 혼인 소식을
전하고 언제쯤 설반이 나올 수 있을지 알아오도록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