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만 있다면 어디든 좋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틈이 없다"

경기침체로 올해 "취업대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 사이엔 요즘 이같은 "농담 아닌 농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4년제 대학이라면 무슨 과라도 좋다"는 대학입시 때와 유사한 양태가
취업전선에서도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올해 H대 경제학과를 졸업하는 현익수씨(25)는 "월급만 나온다면 평생직장
이 보장 안되는 계약직이라도 괜찮다는 친구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입대하기 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물론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런 실태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리크루트가 최근 대학4년생 9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37.3%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취업문이 남자들보다 훨씬 좁은 여학생의 경우는 44%나 됐다.

대학생들이 이처럼 예년과 달리 계약직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한다.

취업문이 워낙 좁아서다.

해마다 배출되는 취업재수생은 10만명에 육박한다.

거기다 올해엔 불황여파로 그 경쟁 정도가 극심하다.

지난 수년간의 호황기에 각 기업들이 필요인원을 예년보다 많이 뽑아 놓아
신규인력수요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큰 이유는 기업의 고용형태에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각 기업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명예퇴직등을 통해 비핵심인력을 줄이고 그
자리에 계약직 사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에 따르면 신한은행등 7개 시중은행의 파트타이머
고용은 지난 94년의 경우 1,900명으로 신규채용 고졸여직원수(319명)는 물론
신규채용 전체 정규직원수(1,020명)를 훨씬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의 계약직 채용은 각종 벤처기업의 창업이 증가하고 멀티미디어
정보통신등 새로운 직종이 생겨나면서 더욱 가속화 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조사대상 기업의 75.9%가 인력충원
경비절감 등에 효과적이라는 이유로 근로자파견제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계약직 채용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그룹의 L이사는 "계약직이 아직은 단순직을 대상으로 하는게 보통이지만
연봉제의 확산과 더불어 점차 확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에따라서는 전체직원의 10~20%를 계약직으로 메우는 곳도 있다"
고 덧붙였다.

경총 노동경제연구원 양병무부원장은 "각 기업들이 연공서열형 승진.임금
체계를 능력중심으로 바꾸면서 계약직채용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취업희망자들도 "계약직=임시직"이라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해
졌다고 말했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