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사업규모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자금조달외에
"경영인력의 확보"가 있다.

기업규모가 작을 때에야 오너 혼자서 사업을 총괄할수 있지만 규모가
커지면 1인체제의 한계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거평 신원 나산 등 신흥중견그룹들은 이런 문제를 "사장 공채"라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기업역사가 짧아 경영인력의 내부양성이 안돼있는 약점을 외부영업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그룹은 신규사업에 진출하거나 새로이 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최고경영자를 공개채용해 사업을 일임하다 하다시피했다.

특히 거평과 나산의 경우엔 외형성장이 사장공채와 궤를 같이 해왔다고
할 수있을 만큼 경쟁적으로 외부로부터 전문경영인을 영입해왔다.

거평은 지난 94년 대한중석을 인수한뒤 공채를 통해 양수제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사장으로 앉혔다.

지난해 네덜란드 필립스계열의 반도체 조립업체인 시그네틱스사와
포항제철의 포스코켐 인수에 크게 기여해 나승렬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는 그는 거평시그네틱스사의 사장도
겸하고 있다.

거평은 특히 "삼성맨"을 많이 영입했다.

양사장외에도 그룹기획조정실의 한창균 기획관리담당전무와 이용수
인사홍보담당상무, 그리고 위성백거평개발 대표이사등이 삼성출신이다.

그래서 거평은 "리틀삼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산은 지난해 5월 그룹부회장겸 나산종합건설 대표이사를 맡고있는
송세창 전삼성물산사장등 8명의 전문경영인을 한꺼번에 공개채용했다.

거평 대웅제약 청구등 일부 기업에서 특정 계열사의 사장을 공채한
적은 있었으나 이처럼 한꺼번에 8명의 전문경영인을 공개 모집하기는
나산이 처음이었다.

나산은 당시 채용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 경영학 교수등
외부전문가까지 동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올 3월엔 신세계백화점부사장 제일제당사장을 지낸 손영희씨를
나산백화점 대표이사겸 그룹유통담담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의류 유통 금융 건설등 주력 4개부문중 2개부문을 삼성출신들에게
맡긴 것이다.

신원그룹도 (주)신원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계열사의 사장을 외부영입
인사로 채웠다.

중전기사업에 본격 진출키위해 지난달 뽑은 양만영 전현대중공업
전무(현 광명전기 대표이사사장)나 제일물산 사장으로 발령한 이준철
전대영물산사장 등이 대표적인 외부영입 인사들이다.

신흥중견그룹들이 이처럼 최고경영자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이유는
앞서 지적했듯이 그룹내부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한 사업이나 인수한 기업은 대부분 기존기업에 비해 덩치
큰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룹내에는 그만한 기업을 경영해본 사람이 없어 대기업
그룹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데려올 수밖에 없다"고 거평그룹
관계자는 말했다.

이들이 전문경영인을 대거 영입하는데는 경영인력의 확보외에 대기업
그룹을 벤치마킹한다는 목적도 있다.

거평이나 나산이 삼성출신을 집중적으로 영입하는 것도 삼성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신흥중견그룹들은 아직 오너개인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움직이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룹의 덩치가 커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룹외형이 1조대를 넘어가고 계열사가 10개가 넘으면 오너 혼자서
챙기기가 어렵다"는 것(나산그룹 관계자).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과 전문경영인을 통한 자율경영및 책임경영이 함께
맞물려가는 시스템이 구축돼야한다는 얘기다.

거평과 신원이 기조실기능을 강화하고있는 것이나 나산이 부회장제를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영입이나 경영조직의 체계화만으로 로 매출
1조원시대의 기반이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최고경영자의 영입이 당장의 기업경영에는 보탬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그룹 나름의 문화나 일체감을 조성하는데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웅제약 파스퇴르유업등의 경우처럼 공채사장이 2년을 넘기지못하고
도중하차한 예도 있다.

따라서 신흥중견그룹들이 매출1조원의 고지에 올라서 고속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조실과 같은 계열사간 업무조정기구의 역할을
강화함과 동시에 자체 인력양성 시스템을 갖춰 스스로 사람을 키워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장진모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1일자).